‘투명사회’의 길은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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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태영 지사 등 고위층의 자살은 비리 척결의 진통… 철저한 수사가 오히려 자살을 예방할 것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부패와 비리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던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대북송금과 비자금 150억원 조성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던 중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투신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올 2월 안상영 부산시장이 뇌물을 추가로 받은 혐의가 불거지자 부산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을 맸고, 한달 뒤인 3월11일엔 인사청탁과 함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남대교에서 뛰어내렸다. 4월29일엔 박태영 전남지사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반포대교에서 투신했다. 특히 박태영 지사는 측근들이 미처 낌새를 챌 틈도 없이 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충동적으로 죽음을 택해 충격을 더했다.

정몽헌 의장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부인, 자녀에게 3장의 유서를 남겼으며, 안상영 부산시장 또한 부인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명예가 무너진 데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유서는 없었지만 변호사를 통해 자살의 뜻을 알렸다.

박 지사가 투신을 결행하기 전 서울 서초동 팔레스호텔 일식당에서 측근·변호사와 함께 연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정창옥 전남도 민원실장(정무담당 보좌관)은 “죽음에 대한 예감은 전혀 없었다. 검찰 수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언론 보도엔 지사님만 속이 불편해 죽을 먹었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이날 아침엔 참석자 7명이 함께 전복죽을 시켰으며 지사님은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원래 무겁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라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평생 명예를 중시하며 살아오신 분께서 비리 혐의로 검찰에 끌려다니고 하루에 10시간씩 조사를 받으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 측근들이 자신 몰래 비리를 저지르고 여기에 더해 지사님이 연루돼 있다고 하니 배신감을 이중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박 지사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까닭은 무엇일까? 투신은 결백을 입증하는 항의 표시일까? 또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벌인 행동일까? 박 지사, 우발적 행동 검찰은 지난해 12월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삼성그룹 한 임원의 자필 메모에서 ‘건보공단에 1천만원 전달’이란 내용을 발견했고, 이를 단서로 건보공단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시작된 수사는 이후 건보공단의 내부 비리쪽으로 흘러갔다. 대기업을 포함한 납품 업체들로부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신아무개 부장이 구속됐고, 이후 인사 비리까지 드러나면서 추가로 임인철 전 전남 정무부지사(전 건보공단 총무이사)를 비롯해 8명이 구속되고 1명이 불구속됐다. 임 전 부지사의 경우 박 지사가 건보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 전폭적인 신임을 쏟아 승진·인사·납품구입 등의 전권을 위임했으며, 전남도지사에 당선된 뒤 정무부지사로 앉혔던 인물이다. 그 밖에 구속된 직원들도 고향·고교 후배 등으로 박 지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이들이다.

4월8일 열린 1심에서 재판부 판결문 또한 “납품 비리로 조달한 금액의 대부분을 공단의 필요 경비가 아닌 이사장의 선거 비용, 개인 비용으로 사용”했으며, 승진 대상자들에게 걷은 1억여원의 금품 또한 “공단의 필요 경비가 아닌 사적인 선거 비용, 개인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자살 직전 박 지사는 좁혀오는 수사망과 불명예의 위기를 앞에 두곤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공 가도를 달려온 고위층들의 심리에 비춰볼 때 일생 동안 쌓은 치적이 한꺼번에 무너질 경우 보통 사람보다도 훨씬 이를 견디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남같이 행동하면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것이 생활신조였던 박태영 지사는 아버지가 면의원 선거에 나가면서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광주고 입학을 2년 동안 미룰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으며, 서울대 입학 뒤에도 9남매의 장남으로서 아르바이트로 동생들을 모두 공부시키며 가장의 역할까지 맡았다고 한다. 졸업 뒤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발한 박 지사는 1978년 대한교육보험에 입사해 9년 만에 부사장에 이르는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91년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팀장을 맡아 인연을 맺은 뒤 정치에 입문해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위기 속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았으며 2002년 전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전형적인 자수성가 스타일인 셈이다. 박 지사와 대학 동문으로 40년을 가까이 지낸 신길수 교수(명지대 경영학과)는 “자존심이 세고 선이 굵고 대범해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유전무죄’ 종말의 쇼크 이에 대해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위장궤양 같은 만성 출혈의 경우엔 헤모글로빈 수치가 5 정도로 낮아져도 자각할 수 없지만, 급성 출혈 때는 8만 돼도 실신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사람이 느끼는 위기감은 정도보다도 속도에 달려 있다”며 “모든 것을 자기 휘하에 두고 해결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무력감을 느끼면서 자아통제권을 잃게 되면 급성 출혈 같은 쇼크가 발생해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또 고위층들의 잇단 자살이 투명 사회로 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고위층들이라면 학연·지연 등으로 서로 봐주는 완충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리가 발견되면 현직 대통령의 손발과 같은 최측근들도 베어버리지 않는가. 제아무리 고위층이라도 비리가 있다면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사회의 청렴도가 높아지는 진통 속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에 놓인 개인들이 통분과 회한 속에서 자폭하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손혁재 교수(성공회대 정치학과)도 “기존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칙이 확실했던 데 반해, 요즘엔 ‘무전유죄’는 아직 남아 있지만 ‘유전무죄’는 사라져가고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을 보며 안타깝고 착잡하지만 죽음으로써 무죄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억울하다면 억울함을 밝힐 다른 통로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외국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자살로 흘린 피가 부정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양기호 교수(성공회대 일본학과)는 “일본에선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 정치인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 운전사, 돈을 관리하는 비서(금고번이라고 불림)가 차례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이 증거를 인멸한 채 사라짐으로써 수사는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 이탈리아는 부패와의 전쟁(마니풀리테·깨끗한 손)을 벌이면서 400명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6천명의 정치인을 조사해 2993명을 부정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가르디니 페루지그룹 전 회장을 비롯해 국영에너지그룹 전 회장, 모로니 사회당 국회의원 등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망각하면 안된다” 정병기 박사(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연구원)는 “이탈리아는 부정부패에 대한 혐오감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몇몇이 자살한다고 해서 수사의 칼날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이념적인 갈래가 다양하고 그만큼 활발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자살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도 잘잘못과 상관없이 죽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정혜신 전문의는 “앞으로도 숨어 있던 비리가 드러나는 와중에 자살하는 고위층이 계속 나올 것이다.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가 치러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게 되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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