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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1. 그녀를 만나는 날.


오늘은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오랫동안 잊고있었 던 설레임이 밀려왔습니다. 두근... 두근... 참 오랜 시간동안 느끼보지 못했던 설레임... 잊혀진 것 같았던 그 느낌에 다시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은 날인가 봅니다. 감은 눈 사이로 맑은 햇살이 비춰들어 왔습니다. 전 그런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온통 세상이 붉게 물드는 듯한 느낌, 감은 눈 사이로 느껴지는 햇살은 나에게 따듯함을 안겨주곤 합니다. 참 좋은 느낌 속에서 눈을 떴습니다.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랑 똑같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그모습 그대로 액자 속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물이 다된 컴퓨터도 여전히 그모습 그대 로 놓여 있었습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방 한켠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거울 속에서 저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하긴, 그녀를 보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한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가만히 거울을 보면서, 이왕이면 조금더 멋지고 근사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리나케 욕실로 달려갔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바디로션의 향기를 오랜만에 맡아 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어지럽혔습니다. 샤워를 하고 생전 바르지 않던 무스와 스프레이를 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깔끔하고 근사한 옷을 골라입었습니다. 잘 생기진 않았지만, 평범하고 수수하게 생긴 내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렇게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와 바로 14년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제 첫사랑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는 그녀를 만나게 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동료는 이런 저를 보고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저도 이런 저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해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14년전,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때, 마흔살까지 기다릴께 하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서른 일곱살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단장을 끝내고 집문을 나섰습니다. 솔찍히 저는 조금 먼 곳에 있다가 간신히 어제 휴가를 얻어서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안되는 건데 꼭 가야한다고 우겨서 겨우 허락을 받은 거죠. 제 이야기를 들은 상사님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 소원을 들어주었죠. 참 고마운 분입니다. 나중에 소주라도 한잔 사야 할겁니다. 집에 도착했을때, 가족들은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요.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생활한 것이 거의 십년이 되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잠을 안주무시더니 아직도 다들 주무시나봅니다. 저는 가족들이 깰까봐 조용히 집을 나왔습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옛날과 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지나가고, 할머니들도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옛날에는 저 사람들은 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젠, 그런 것들을 궁금해 하지 않을만큼 저는 다 커버린 거겠죠...

아, 저기 버스가 옵니다. 저 버스가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임에 틀림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한적한 여유... 후후... 그동안 제가 너무 각박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녀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해서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14년전 오늘을 꼭 기억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불길한 생각을 없애려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지금쯤 어떻게 변해있을까... 사실 그녀의 결혼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저는 아주많이 슬프기도 했었지만, 작은 희망이 다시 생겨났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쁜 줄은 알지만, 그녀의 이혼이 저에겐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소식을 들은 이후에 그녀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워낙 용기가 없는 탓도 있었지만 막상 그때는 그녀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재혼은 한걸까... 그렇다면... 아이도 있겠지... 정말 그러면 난 어떻게 하지... 아니야... 아닐거야... 아, 그녀는 참 예쁘게 나이를 먹었을 것 같아... 그래...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맑은 눈으로 나를 바 라봐 줄 수 있을거야...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해 졌습니다. 버스는 조금씩 차선을 따라 약속 장소에 도착해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10분 정도가 남아있었습니다. 아, 이제 내려야겠군요... 저는 벌떡 일어나서 재빨리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녀와 헤어졌던 이곳은 참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그녀와 만나기로 했던 그 벤취가... 어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공원은 참 많이 변해버렸고, 그래서 큰일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벌써 와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저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분명히 이 근처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냥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맑은 8월의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그날처럼 푸르렀습니다. 푸르름이... 이렇게 예쁜 색깔인지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녀에게 첫 인사를 어떻게 할까... 잘 지냈니? 아니야... 그럼... 아, 이건 어떨까... 오랜만이야. 보고싶었어. 아니다... 조금 더 근사하고 멋진 말..... 음... 어떤 것이 좋을까... 저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긴 시간동안 그녀를 보고 싶어했던 나의 마음을 더 적절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어떤 인사가 좋을까...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런데 넌 여전하네. 그래, 이게 좋겠군... 별로 어색하지도 않고, 친근한 표현이니까.. 후후.. 그래, 그 말로 해야겠다...

시간을 보니 이제 약속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녀가 조금 늦나보네요. 원래 그녀는 항상 오분이나 십분정도 늦곤 했습니다. 녀석이, 오늘도 그정도는 늦으려나 봅니다. 후후...

지난 시간동안, 그녀는 나를 떠나 많이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늘 그녀에게 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더 많이 잘해주고, 더 많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그녀에게 참 많이 미안했습니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걸 알지만, 그래도 다음 세상이 아직 나에게 있으니까... 그녀와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작은 키에 귀여운 발걸음... 그녀가 틀림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그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심호흡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준비해 둔 인사를 잘 해야해. 그래, 난 잘 할 수 있어...

조금씩 그녀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4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예쁜 보조개가 보였습니다. 성숙한 정장차림인 것만 다를 뿐, 그녀는 여전히 귀엽고 예뻤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녀는 저와의 약속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그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 그를 만나는 날


아침에 자명종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게 울렸습니다. 잠을 깨고 시계를 끈후에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이나 맑은 날인가 봅니다. 감은 눈 사이로 햇살이 비춰들어왔습니다. 이럴 때면 온통 세상이 붉은 빛으로 변해버립니다. 예전엔 이 느낌이 무척이나 싫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이 느낌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오늘 그를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14년 전의 약속... 어제부터 저는 무척이나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가 과연 기억하고 있을까...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제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결혼식날 그는 나에게 찾아와 행복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난 그와는 결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나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내 결혼을 많이 아파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는 꿋꿋하게 나에게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흔살까지는 기다릴께 하고 말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결혼 생활이 그리 불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늘 기억 한켠에 남아있는 그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 것이 그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아직은 어렸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나보다 두어살 어렸지만 저는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세월이 지나면서 그건 저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조금 철이 들고 나서는 나에 대한 애정이 식어갔다는 걸 전 압니다. 그렇게 그를 놓아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와 헤어지게 되었을 뿐입니다. 제가 이혼했다는 소식은 아마 그의 귀에도 들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아마도 그는 분명히 지금까지 결혼은 커녕 여자한번 못사귀어 보고 마흔살이 되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스러웠습니다.

오늘... 그는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약속... 그리고 약속장소에 그대로 서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를 만나야 할지, 어떻게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그는 소중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항상 꿈을 꾸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했습니다. 어느덧 홀로 지내온 시간들... 그 시간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도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검은색 정장을 골랐습니다. 어느덧 서른의 막바지로 접어든 나이... 이 나이에 어울리는 정장들... 시간은 참 빠른 것 같습니다. 그의 맑은 눈에서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언젠가 흘러흘러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긴 강물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만약 나를 받아준다면, 그렇다면 그에게 나의 남은 삶을 함께 하자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그를 보면, 어떻게,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그가 나를 보면 반가와할까...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문득 옛날 그와 함께 버스를 타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그는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그는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걷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늘 걸어서 집까지 바래다주곤 하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칠년간 만났던 사람, 그래서 볼꼴 못볼꼴 다 본 사람,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할만큼 추한 모습도 많이 보아왔는데도 그는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였을까... 그래... 어려서였을거야...

지금은 그가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그런 사랑도 세상에 있을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그런 그의 사랑을 받았던 나는 오히려 행복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저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할때면 나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생각마저 들곤 했습니다. 아니면 그것이 차라리 집착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많이 힘들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젠,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사랑이라는 거, 오히려 내가 추상적으로 생각했다는 자책감이 듭니다. 그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이제 조금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겁니다. 이런... 제가 조금 늦었군요. 아마도 그는 마음을 졸이면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가 나에게 따듯하게 미소지어 주면, 난 그에게 미쳐 주지 못했던 그런 것들....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저 멀리 공원이 보였습니다. 공원은 참 많이 변해있습니다. 늘 지나가던 길이라 알지 못했지만, 14년전의 그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쪽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보면, 그냥 반갑게 웃어주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신기하게도 심장이 쿵닥쿵닥 뛰기 시작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다가갈수록 십대 소녀때,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처럼 설레이기 시작했습니다. 할걸음... 한걸음... 이제 저쪽입니다. 어렴풋이 약속장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곳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갑니다...





3. 그를 기다리며.


그가 있어야 할 약속장소에는 그가 있지 않았습니다. 길게 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가... 약속을 잊은 걸까... 그의 사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은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을때, 갑자기 풀어지는 긴장으로 인해 저는 잠깐 넘어질 뻔 했습니다.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벤취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걸까...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많이 고민하고 나왔는데... 안오면 어떻게 하지...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8월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습니다. 어쩌면 14년 전에는 이런 맑은 하늘이 14년 후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1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맑았습니다... 그도, 저 하늘처럼 여전히 그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려 줄 것 같았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부담스럽고,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적도 있었지만, 어느순간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게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보내며,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꼭 나의 신부가 되어줘... 부탁이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혐오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싫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 그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정의내린 다음부터 언젠가 그를 떠나겠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변하지 않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 입니다. 만약 그와 결혼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어느새 약속시간보다 30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달려올 것 같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미련일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도 저는 그곳에서 떠나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 그에게 그만 '나쁜놈'이라고 욕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럴거면서... 이럴거면서...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를 떠난 건 저였고, 그를 힘들게 했던 것도 저였다는 걸 아니까.. 그에게 뭐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그가 미워졌습니다. 그에게 단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습니다. 철들고 나서는 단 한순간도 그를 사랑한다고 느껴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혼자서한 이 약속을 지키든 말든... 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미웠습니다. 내 생각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나쁜녀석.... 나쁜녀석...'

그냥 그랬습니다. 기다린다더니... 나쁜녀석... 오늘 만나면, 그냥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1년동안... 인생의 반을 넘게 끌어온 기다림같은거... 그냥 오늘 끝내고 싶었는데... 나쁜녀석...

그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그는 나에게 사랑이란 이런거야 하고 알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참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그냥 좋은 느낌은 아닌데... 인생의 반을 살아오며, 바보같이, 바보같이.......





4. 그녀를 보내며


또박, 또박... 그녀의 걸음은 여전히 귀엽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옛날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녀가 저를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녀가 이제 제 앞까지 왔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갛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넌 여전하네?"

연습한대로 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밝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첫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그녀는 어쩐 일인지 넘어지려 했습니다. 저는 깜짝놀라 그녀를 부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잘 지냈어?"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녀는 내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보고싶었어...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그녀는 벤취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곤 시계를 쳐다보았습다. 그리곤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너를 보게 되어서... 너무나 기뻐... 너무나 행복해..."

그녀는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저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저의 노래입니다. 저의 생명입니다.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해... 영원히 너만을 사랑해..."

그녀는 여전히 저를 보지 못합니다. 그녀의 손을 잡아보아도,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보아도, 그녀는 여전히 저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녀가 울기 시작합니다. 제가 그녀를 울린 것 같습니다. 제가 그녀의 곁에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녀는 제가 그녀의 곁에 있다는 걸 알 지 못합니다. 그녀에게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이라고 마음껏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울지마... 울지마...

그녀의 눈물은 맑았습니다. 그녀의 눈망울만큼이나 맑았습니다. 그녀는 저를 사랑합니다. 저역시...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녀의 곁에서 단 하루라도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저를 볼 수 없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귀여운 손에 고였습니다. 눈물은 햇살에 비춰 수정처럼 맑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 게 나타나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울고 있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를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손에 내 손이 닿아도...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오랜시간을 울다가 밤이 다 되어서야, 벤취에서 일어났습니다.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내 볼에도 맑은 눈물이 따라 흘러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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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옛날에 글쓰는걸 좋아했나봅니다.. ^^;;;
우연히 검색하다가 구글에서 제 아이디로 검색을 해봤는데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홈페이지가 아직도 남아있더군요. 거기 올렸던 글들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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