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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 기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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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며칠전 지리산 깊은 골에서 이현상을 추모하는 제를 지냈노라고 소식을 전해옵니다.
해마다 제를 올리는 이들이 있다니... 상상 못했던 일입니다.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아직은 조심스러운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마음에 깃들만한 인물이었는지 몰랐습니다.

그 시절 제가 태어났었다면...
약간의 정의감에 입산했었다면...
배 곯아가며, 손발이 동상으로 얼어터지며 그 산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일찌감치 백기 들고 투항했었을 것입니다.

밀양 할매들이 조폭경찰들에게 머리가 짓뜯겨도
겨우 '송전탑 반대' 티셔츠나 하나 사서 입고,
우리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되어도
겨우 진도 앞바다에 가서 눈시울만 조금 적시다 돌아오는
그야말로 비겁한 인간...

일제치하에서
할아버지는 면서기였고
외할아버지는 순사였습니다.
외삼촌이 징용에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니
끗발있는 순사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극적으로 동조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그 시절, 명절 때면 바리바리 선물이 들어왔었노라고 자랑하곤 하셨습니다.
강점기 때 살다가 돌아간 1세대, 2세대 일본인들이 가끔 추억 찾아 관광을 오면
사람들은 딴에 지역 유지인 아버지께 데리고 왔습니다.
일본말로 안내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답례로 일본 과자 한상자를 선물하면
어머니 얼굴은 소녀처럼 변했습니다.
어린 나는 그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두세대를 넘어 손자 놈도 그렇게 소극적이고 비겁하게 근근히 목숨을 이어갑니다.
나는 누가 기억할까요?
아무런 의미 없이 바람에 흩날리다 누구의 기억에도 깃들지 못하고 사라지겠지요.
나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참으로 두렵습니다.




최순희 - 지리산 곡(哭)


* 최순희 : 북의 공훈배우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남부군 문화지도원으로 활동하다 1952년 생포되었고, 2015년 91세의 나이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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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북에서도 남에서도 잊혀진 남부군 사령관이었지요. 엊그제가 기일이었습니다.
영화 '남부군'에서 인기있는 유격대장으로 묘사되지요.
본문의 최순희씨는 그 때 이현상 사령관과 함께 활동했던 분이어서 해마다 9월이면 혼자라도 노고단에 올라 제를 지내고 원혼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다고 하더군요.
https://ko.wikipedia.org/wiki/이현상  을 검색해봤습니다.
저의 고향 어르신이군요.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 저는 내부리.
한국전쟁당시 낮에는 국군이 온 집안을 해집고,  밤에는 빨치산이 온 집안을 해집고, 밤낮으로 그렇게...
어머니께 들은 그때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그곳 출신이셨군요!
오래전에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로 부터 감사패를 받았던) 북한 어린이 돕기 거리공연 모금활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장소가 장모님 가게와 가까워서 한번 와 보실 법도 한데 안오시길래 "바쁘신가보다!"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장모님도 아픈 시절을 보내셨더군요.
지리산 맞은편 백운산 자락에 사셨는데... 오빠가 희생 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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