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정우용님의 글입니다.

  ‘친일파의 친(親)은 본래 친구라는 뜻이 아니라 어버이라는 뜻’이라고 했더니 수긍하지 않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부친(父親), 모친(母親), 양친(兩親), 선친(先親), 엄친(嚴親) 등에서 보듯, 친(親)에는 어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도 ‘오야지(親父)’는 아버지, ‘오야붕(親分)’은 ‘아버지처럼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880년 중국인 황준헌은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취해야 할 외교 방략으로 친(親) 중국, 결(結) 일본, 연(聯) 미국을 제시했습니다. 결(結)은 동맹, 연(聯)은 연합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중국에 사대(事大)하던 상태였으니, ‘친(親) 중국’은 '중국을 어버이처럼 의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함석헌의 스승 류영모는 유교 경전 '대학'에 나오는 '재친민(在親民)'을 '씨알 어뵘이 있으며'로 풀었습니다. 여기에서 '씨알'은 민(民)이고, '어뵘', 즉 '어버이로 섬기다'는 '친(親)'입니다.

  안중근의 동지였던 정재관은 ‘친일파’를 ‘일본을 의지하여 우리나라를 팔며, 일본을 의지하여 우리 황상폐하를 능욕하며 일본을 의지하여 우리 동포를 학살하며 잔인하고 악독하여 사람의 낯에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로 정의했습니다. 다른 나라 친구가 원한다고 자기나라를 파는 자는 없습니다. 자기 형제를 학살하는 자도 없습니다.

  지금, ‘종군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피해자들을 다시 능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자들은 ‘일본과 친한 자’가 아닙니다.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군을 ‘어버이’로 섬기는 자들이죠. 저들이 동족인 피해자들의 '명예'를 거듭거듭 짓밟는 건, 자기들이 어버이로 섬기는 군국주의 시대 일본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보면, 저들이 이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20세기 초 ‘친일파’와 같은 뜻으로 쓴 말이 ‘토왜(土倭)’입니다. 대한매일신보는 토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낯짝은 한인이나 창자는 왜인인 도깨비 같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