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와이프랑 자주 가는 한강 상류 둔치의 모 카페에서 해가질 무렵, 한강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현생과 전생 사이 어느 지점에서 본 그런 저승 입구로 가기위한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뭐 그런 풍경처럼 느껴진다 할까요?
먼저 와 저와 같이 배를 타려 삼삼오오 모여 기다리며 반겨주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산책을 하듯 배회 하는 풍경과 같다는 그런 생각, 사후세계 라는 이 글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 보다는 따듯하고 행복한 그런 상상을 사진 보며 가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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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권선징악적 모습일까요?
말씀처럼 석양빛이 묘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 또 반려견들 반려묘들 등등이 기다린다는 상상을 하면 죽음 자체는 본능적으로 두렵겠지만 죽음이 그리 나쁘지 않겠다라는 막연한 생각들이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하는 바램같은 거죠.ㅎㅎㅎ
전등이 꺼지듯 아주 꺼지는 죽음도 그리 나쁘지 않기도 하구요.
살아낸 것만 하더라도 수고했다면...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들이 무게나 부피없는 무한의 공간에서 죽기직전 폭발한 도파민 축제로 셋팅된 시스템으로 무한의 날을 보낼 것 같습니다.
좀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줄껄.
제가 아픈것도 있지만 이게 제 인생서의 수많은 실수와 남들에게 준 상처들을 대변할 수 없기에...
착하게 살려만 해도 감정이 먼저 앞서는 저이기에
방금 생각해낸 사후세계도 두렵기만 합니다
삼촌 말대로 안식의 공간뿐이라면 지금 당장 제 목숨을 거더둬 좋을거 같아요
인생은 쓴 고독함과 괴로움 상처 뿐이기에...
제 멘탈이 강해서 일까요? 전혀 그렇치 않죠. 저는 그냥 기다립니다. 잊혀지기를 잊어버리기를 잠시라도 잊을 방법을 찾고 그 잠시 잊을 방법을 더해 더 긴 시간을 잊을 방법을 더 찾고의 연속이죠.
모두 별일이 아닌 사소한 문제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상처가 깊어 많은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죠. 그러한 날들을 보내면서 강해지려고도 뻔뻔해지자고도 생각하지 않았죠. 그럴 의지도 희망도 없었구요. 그냥 죽지못해 살았다는 표현이 맞는 그런 날들을 그냥 꾸역꾸역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거에요.
그렇게 숨만쉬며 살았는데 저는 강해졌어요. 삶은 내가 이끄는 그 어떤 방향으로도 잘 이끌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이 부분이 제일 절망적이고 외로움을 넘어 고독하기까지 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인간실격이란 드라마를 보면 전도연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 됐어요.'
지금 찾아 보니 불과 내나이 50에 본 최근 드라마군요.
https://youtu.be/PiUZPutlV-8?si=mylGdJRlATHN-d8K
괜찮고 괜찮아 질겁니다.
그냥 하루하루 물에 밥 말아먹듯 살며 견디기만해도 하루하루 강해지는 게 마음이고 상처는 아물거에요. 정말 본인에 삶이 가치없다 느껴진다해도 곁에 본인이 없으면 않되는 냥이도 있구요. 저는 반지하에 살다 우연하게 들어온 냥이 한마리 때문에 그냥 살기로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죽음이 사는 일 만큼이나 연속인 날들이었죠. 그 고양이 손녀가 지금 같이 사는 봉자라는 고양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