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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대하는 마음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관리가 결정되면 예빈시라는
관청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음식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예빈시의
음식이 형편없고 더러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손도 대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심지어 밥에 쥐똥이
섞여 있기까지 했으니, 그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명종 때부터 선조 연간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관료였던 정유길은
그 음식을 남김없이 먹었다. 물론 쥐똥이야 골라내고 먹었을 테지만,
눈 하나 까딱 않고 태연히 음식을 먹는 그의 먹성은 참 대단했다.

정유길은 잔칫집에 갈 때면 언제나 조반을 먹지 않고 갔다.
집안사람들이 조반을 먹고 가라고 권하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하여 음식을 차려 놓고 부르는데, 내가 만약
집에서 배불리 아침밥을 먹고 간다면 잔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것 아닌가.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렸더라도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잔칫집 주인은 자신이 차린 음식이 보잘것없어서 내가
먹지 않는 줄 알고 서운해할 것이야.
이 어찌 오만하고 무례한 짓이 아니겠느냐.”

이런 마음으로 언제나 음식을 대했기 때문에 정유길은 어느 자리에서나
환영받았다. 이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아득한 옛말이 되었을 정도로
먹을거리가 풍족한 시대가 되었다. 어려운 집도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음식의 풍족함은 지나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대하고도
무덤덤한 경우가 많다.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음식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을 들였겠는가.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위해 많은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고 요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식탁에 놓이기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의 노동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다. 음식을 대하면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
적이 얼마나 있을까.

건강하고 맛있게 먹어 준다면 음식을 준비한 사람 역시 흐뭇해할 것이다.
정유길이라고 왜 쥐똥 섞인 밥을 알아차리지 못했겠는가마는, 내 앞에 놓은
음식이 어떠하든 정성스럽게 대하는 마음이 참 아름답다. 이런 사람이라면
세상의 무엇을 대하더라도 남을 배려하고 그들의 값진 노동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품어 줄 것이다. 오늘 내게 놓인 음식을 마주하면서, 그 정성에
값하는 하루를 지냈는지 되돌아본다.

- 김풍기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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