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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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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집을 지으며 살아온
늙은 목수는 어느 날 이제 일하는 걸 그만두고 여생을 즐기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를 고용하고 있던 사장이 솜씨 좋은
기술자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말한다. 개인적인 부탁을 하나
하겠다.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집을 한 채만 지어 주고 떠나라.
목수는 승낙했지만, 그러나 마음이 이미 떠난 터에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그는 싸구려 자재를 쓰고 대충대충 일했다.
이른바 부실공사.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불성실한 공사였지만
더 이상 목수로 살지 않겠다고 작정한 그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공사가 끝났을 때 사장이 그에게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당신의 집이다. 당신에게 주는 내 선물이다.

마음 떠난 늙은 목수의 마지막 공사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이다. 어디서 보았는지 들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떠올랐을까. 얼마 남지
않은 이 정부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고 싶은 바람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정권 말기만 되면 이런 저런 추한 스캔들에 휘말려서 허둥
거리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좌초하는 정부를 여러 번
겪었다. 레임덕 현상이 이유라고들 말한다. 정권 담당자들의
긴장감 실종이 레임덕 효과일 테니까 틀린 진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담당자들의 긴장감 실종이 레임덕을 초래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은퇴를 앞둔 늙은 목수의 부실공사
같은. 마음이 떠나 있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법이다.
마지막 몇 분을 방심하여 패하는 축구 경기를 여러 차례 본다.
심지어 인저리 타임에 골이 터지기도 한다. 축구 해설가들은
종종 시작하고 5분, 끝나기 전 5분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충고도 들린다. 마지막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과정과 절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일 것이다. ‘마지막만 좋으면 다 좋다’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식 작용에는 묘한 데가 있어서, 중간 보다는
마지막 인상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 인상이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남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단지 타인들에게 남겨질
마지막 인상의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이 만들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마지막 무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안일함과 나태, 도덕적 해이, 긴장감의 실종을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이 말 속에 숨어 있지 않나 싶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도 있다. 한 명의 타자만
잡으면 경기가 끝난다고 방심하다가 역전당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년 병장을
향한 조언 속에도 마지막 순간의 방심으로 지난 2년여의 시간을
그르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의식도 없이 몸져누운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그
자신도 건강하지 않은 칠순의 할머니가 한 말이 자주 떠오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의 육체적인 고단함과 정신의
피로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 일을 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어서인데, 남편이 한을 가지고 떠나게 할 수는
없어서라고 했다. 힘들다고 남편과 살아온 한평생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것은 남편의 삶에 대한 부정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이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 버려야
목수는 마지막 한 채의 집을 대충 지어냄으로써 자신의
목수로서의 전 인생을 부정했다. 이것은 당신의 집이다,
하고 주인이 준 열쇠는 바로 그가 지은 집의 열쇠였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산다. 지금 마지막 집을
짓는 사람은, 지금 짓는 집이 마지막 집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 마지막 공을 던지는 사람은, 지금 던지는
공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이므로, 참된 뜻에서, 마지막은 없다.


- 소설가,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이승우 교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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