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쩍 뛴 분들께 한 마디 더 2 정보
펄쩍 뛴 분들께 한 마디 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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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표현으로,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릅니다.
말과 생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그것은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게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저는 '삼가다'라는 단어를 제대로 써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법적으로 틀리더라도 '삼가하다'란 말이 더 확산되어 그것이 문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장면도 되었다가 짜장면도 되었다가 하는 게 말이며, 사람의 생각의 결과들입니다.
딱 한가지만 더 예를 들자면,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가 베드로를 바닷가에서 처음 만났고, 배에 있는 베드로더러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말하였고,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하여 베드로가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의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구입니다. 그것은 비유이며, 그것은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베드로의 형 안드레가 세례 요한이라는 선지자의 제자가 되어 그를 그리스도라 믿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세례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라는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에 안드레는 요한을 버리고 예수에게 찾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베드로에게 먼저
가서 예수에게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를 찾아가서 제자로 삼아달라고
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무슨 포교를 할 의도는 전혀 없구요. 다만 동시대에 그리스도교가 가장 보편적이며 대중적인 철학으로 자리잡았고,
일반 대중 중에는 그리스도교를 통해 철학적인 성찰에 있어서 그나마 유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가 가장 보편적이고,
교리가 잘 확립되어 있고, 그들의 경전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기에 예를 들기에 좋다는 말입니다.
또 당대의 부유층만 소유할 수 있었던 배를 가진 베드로가 배를 버려두고 선지자를 쫓았다는 내용은
한 기득권층의 인물이 중요한 가치를 위해 서민의 삶으로 뛰어들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한 게 마태복음의
바닷가 장면이라는 사전 언급이 필요할 뿐입니다.
본론을 서둘러 말하자면, 모든 시대에는 기득권층과 피지배층이 존재하였으며, 그것은 민주주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려는 내용입니다. 물론 민주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아
누구나 노력만 하면 상류사회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음을 잘 알 것입니다.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에서 비롯된 오류이지요.
흔히 계급투쟁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며 추악한 것으로 말하는데, 민주주의 가치에 비추어볼 때 당연합니다.
이미 민주주의는 확립되었는데, 그 안에서 계급투쟁을 한다는 것은 바보이거나 망상에 의한 오류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주의의 맹폭성과 불완전성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거대 자본가들은 소자본가들을 농락하고 그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추호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 주로 거대자본가들과 친한 정치 세력은 그러한 구도를 바꾸는 일을 마뜩치 않게 생각합니다.
수정사회주의라는 게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지금의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중국이나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이정희 씨, 미안~), 그렇다고 서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이 걸었던
길이 아닙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지금 전 세계가 북유럽의 수정사회주의 체제를 부러워 하고
연구하며 따르려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한민족의 미래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결정할 수 있는 지도층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하고자 함입니다. 그들은 바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기득권층입니다. 그들은 이전의 방식을 바꾸기를 원치 않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수정사회주의로 대한민국이 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법안을 바꾸고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모든 길목에서 딴지를 걸며 과거에 머물수 있기 위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할 것입니다.
그들은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그럴듯한 공약을 내걸지만, 결코 실천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민들에게
공약을 하여 표를 얻은 뒤 미래로 나가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모습 그대로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예수가 살았던 시절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처럼 분명 백성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백성들에게 기득권을 나누기는 원치 않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에게 동조하는 서민' 이러한 표현은 엉뚱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펄쩍 뛰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정희 씨의 모습이 바보처럼 비쳐지는 것은
조금만 의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한결 같을 것입니다. 또 이정희 씨가 이번에 망쳐놓은 서민들의 표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권은 수시로 바뀌는 게 좋습니다. '기득권 - 서민' 이런 단어를 언급했는데,
민주당만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쳤다면 아직 세상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득권층에게 실패를 맛보게 하고, 그들이 백성들을 두려워 하게 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 서민들은
생각을 넓히고,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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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그렇게 강요하시면 이게 먼 민주주의 입니까 ㅡㅡ

쉽게, 써 주시지요. 현학적이라고 해도, 이해가 잘 되는 글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문장의 맥락들이 연결이 잘 안되서 이해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