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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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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촛불을 패러디한 시’들을 보며 든 시인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산하

 

이제 세상은 ‘적당히’ 바뀌었고 촛불은 꺼졌다.

길이 다시 어두워지면 불씨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에서는 아날로그 양초촛불이

디지털 LED촛불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기 온몸을 다 태우고 녹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나는 그것이 노동자에서 소시민적 인텔리로 

우리 사회변혁의 중심이 바뀐 신호로 보였다.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바꿀 근본적인 변혁 없이

나무를 골라 옮겨 심는 정도의 기회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마침내 다시 착륙한 것이다.

촛불이 계속 광화문광장에 갇혀 있었던 것도 그런 탓이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광화문광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그런 탓일 것이다.

 

촛불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30년 전 박종철, 이한열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꽃은 피자마자 졌다.

30년 후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불꽃도 피자마자 졌다.

6월항쟁에 벽돌 한 장씩을 얹었던 청춘들은

노동 없는 디지털 촛불에 눈이 멀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광화문광장은 텅 비었다.

독재의 무기는 칼이고 자본의 무기는 돈이다.

칼은 몸을 베고 돈은 정신을 벤다.

우리는 몸도 베였고 정신도 베였다.

우리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입은 여전히 진보의 깃발을 흔들며 외칠 것이고

발은 지폐가 깔린 안전하고 편한 길을 골라 걸을 것이다.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인공들 역시

노동대중을 벌레처럼 털어내며 더욱 창대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의회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자본과 소수 엘리트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촛불이 아무리 풀과 물을 불로 바꿔놓아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주의는 여전할 것이고

세상도 적당히 바뀔 만큼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촛불이 곁에 있어도 촛불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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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국민다수의 동의를 이끌 보편적 노동운동이 필요합니다. 노동운동이 프랑스나 다른 선진유럽에서 보고 배운 유행가 만양 읊조리며 Ctrl+c만을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1953년 휴전 이후 이승만 독재, 박정희에서 노태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예속독점자본의 적극적 육성에 기반한 대외의존적 수출주도경제 확립을 위해 민중수탈 구조의 틀을 고정화시키려는 일련의 폭력으로 부터 필사적인 반대운동을 펼친 과거 노동가들의 흘린 피와 땀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어 가속화에 제동을 걸었다지만 요즘의 부르주아 노동가들은 이 노동운동의 숭고한 역사를 팔며 땀조차 흘리기를 싫어하는 건달이 되어져 있음을 자각해야합니다.

촛불을 들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혁명의 시작으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공직이나 완장을 차고 행세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혁명에 묻어가려 뼈진보를 외치고 노동자를 팔아대며 아귀다툼을 하는 일부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민주주의가 횡횡하여 민중의 육신과 정신이 칼에 베이는 흡사 살육이 난무하는 이 급박한 현실에서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몹시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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