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계단을 밟으며 정보
수필 계단을 밟으며본문
까마득한 높이에 쳐다볼수록 위축이 되는 울울한 숲. 어찌 오를 것인가. 막막하지만 으레 숲속은 하늘로 향하는 통로가 나있다. 밀밀한 숲길을 걷다가 사람 손길이 닿은 계단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그렇게 흡족할 수 없다. 믿는 구석이라도 생겨난 것인 양 든든해진다. 향하는 길의 자연스런 안내이며 배려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문명의 혜택이란 것이 내게 가깝고 친근하기 때문에 또 그러하다싶다. 아마도 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것에만 휩싸여 있다면 밀폐된 느낌에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고 말 것이다.
계단은 대개 낭떠러지이거나 흙이 많이 패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계단은 흔하다 싶은 단순한 실체라 여겨서인지 계단이 없다면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고마움을 또 금세 까먹는다. 그런 계단은 안전을 도모할 뿐 아니라 내 디든 발길로서의 보람을 꼭 쥐어 준다. 계단을 다 오르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그 보람을 훑어 볼 참이 아닌가. 굽이쳐 솟은 산길을 쫓는 발길은 늘 힘에 부친다. 성큼성큼 다가서 단박에 오를 듯 사뿐 사뿐 경쾌하게 오르던 계단이 어느 참 디딜 여력이 모자라 터덕대기 일쑤이다. 그러한 때 느끼는 계단의 질감은 상당히 말초적이다.
이왕이면 나무계단이었으면 한다. 푹신푹신한 부드러운 촉감 말고도 발끝에 닿는 소리가 철 계단 같이 쟁쟁하지 않아 토닥대는 은은한 운치가 산 공기처럼 산뜻하다. 돌계단은 딱딱하여 발걸음이 더뎌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피했으면 하지만 대개 보면 지형조건에 맞게 깔려 있다. 산 아래 계곡이 가깝고 급경사를 이룬 무른 곳에서는 유실이 심하여 이를 막기 위해 어쩔 수없이 돌을 빼곡히 채워 넣어 쏠림을 막고 바위를 잇는 험한 곳엔 철 계단으로 튼튼하게 골격을 이루도록 한다. 나무계단은 빗물이 넘치지 않는 지형이나 토양유실이 덜한 산 정상 가까이에 많다.
어디서든 계단을 밟노라면 자연 시선은 아래로 쳐지고 책 페이지를 넘기듯 차분해지고 정신 집중이 잘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계단을 밟으며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생각은 계단 같이 층층이 꼬리를 물듯 겹겹이 쌓여지는 때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사고를 자아낸다. 계단이란 말을 뒤집으면 단계란 말이다. 사전을 들추어 보면 같은 한자어로 의미 또한 같다. 하지만 실상에는 쓰임에 차이가 있다. 계단은 형상물을 나타낼 때 쓰고 단계는 추상적인 의미로 곧잘 쓰인다. 어쨌거나 커가며 배우는 단계가 있듯 계단같이 층층이 밟는 것이 생각이고 인생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태아날 때는 여타 동물들과는 달리 하등에 불과하다. 단계를 밟아 만물의 영장이란 직함을 갖는다. 스스로 극복하고 지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단번에 일어설 수 없으며 한 번에 의식이 깨거나 알아차릴 수 없다. 경험으로서나 교육을 통하여 차츰 나아지고 사람답게 변모한다. 지금의 나란 존재는 많은 단계를 접하고 익혀 그 어디쯤의 높이에 서있기도 한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은 생각의 단계를 갖고 일의 순서를 익히는 기술을 찬찬히 배워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군계를 이루는 동물들에게서도 질서가 존재한다.
하지만 단체 행위의 수단으로 본능적으로 소유하는 것일 뿐 인간처럼 사유의 무궁함 속에 생각하는 질서를 깊게 갖지는 못하였다. 내가 갖는 어떠한 생각이란 것은 소싯적의 사고와 같지 않다. 많은 단계를 거쳐 노련하고 유식하여져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러한 나는 과거보다는 필시 더 나은 존재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싯적 순진하였던 때가 마냥 그립고 순수함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앞선 영악함으로 시간의 계단을 자칫 잘못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부쩍 밟는 삶의 계단에 두려움이 인다. 노쇠하여 계단을 내려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생활에서 계단을 밟지 않은지 오래다. 어쩌다 밟게 되는 계단은 푸념의 대상일 뿐이다. 어디를 가든 찾는 것이 엘리베이터이고 에스칼레이터이다.산에서도 찾는 것이 케이블카다. 쌩하고 순식간에 날라다 주는 엘리베이터에 취한 나머지 계단을 밟듯 차곡차곡 쌓는 것의 소중함을 잃은 것만 같다. 저금통에 꼭꼭 채워 넣던 동전 한 닢 같은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들을 거들떠 볼 겨를이 내게 있는가 싶다. 엘리베이터처럼 누구든 찬찬히 오르는 단계를 넘어 단숨에 달려가려 한다. 졸지에 스타가 만들어지고 졸부가 나서고 단번에 일확천금을 갖는 이 세상은 편리하고 쉽게 얻어지는 것에 의해 거의 점령이 된 셈이다.
그렇게 세상이 바삐 어디론가 달려간다 싶어지니 작아지는 것이 내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달라질수록 상관없이 잊혀 질 것들이 작은 것들이고 몰라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을 제 아무리 받고 편하게 산다하여도 인간은 그것으로 가치의 존재를 모두 인정받지는 않는다. 누구말대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생각에는 뜻이 있고 맛이 있으며 거쳐야 할 사고의 단계가 있다. 자신을 돌보는 마음도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 생각 속에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쯤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을 것이 생각의 깊이이고 마음의 수양이 아닐까.
사고의 허술함으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삶의 무기력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다. 사람에게는 품위라 할 것이고 명예라 할 것이고 자존이라 할 것이 생각의 뜻대로 뜻 있게 존재하지 않는가. 사유는 바로 마음에 놓인 계단과 같다.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생각하고 질서를 찾는 것이 내 자신이고 바로 인류의 행복이다. 나는 나무계단을 무척 좋아한다. 글을 쓸 생각에 머문 착상은 나무계단을 밟듯 폭신폭신한 사고가 꼬리를 물 때 비로소 광영을 본다싶다. 부드럽고 윤택한 사고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난 나무계단을 오르듯 그 포근한 사유를 꿈꾸며 마음의 산을 오른다. 과연 나는 어디쯤 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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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네요 ^^
좀 배려를 하신다면...
시리즈로 올렸어도 괜 찮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