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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분석한 2022 월드컵 유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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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월드컵 개최지가 정해지기까지 이제 불과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오는 12월 스위스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오는 2018년과 2022년 2개 월드컵의 개최국을 결정한다. 2022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든 우리에게는 길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판세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202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의 최근 주장을 참고해 내가 FIFA 관계자가 됐다고 가정해 보겠다. 유치위원회는 나의 이 정도 반박에는 가볍게 재반박을 할 수 있어야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방한해 주요시설을 점검할 FIFA 실사단의 질문에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한국의 월드컵 개최에 아주 불만인 한 FIFA 관계자가 돼 악역을 좀 맡아 보겠다. 나 오늘 좀 삐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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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 나이지리아 경기를 찾은 외국인 관중들이 2022년 월드컵 한국 유치를 희망하는 배너를 들고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 국민적 관심 부족

◆유치위원회의 주장

“2002년도 월드컵의 취재를 위해 한국을 찾아온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보여준 응원의 열정과 규모를 바라 본 세계 각국의 언론은 ‘월드컵 사상 유례가 없다’는 찬사를 보내며 큰 관심을 갖고 보도를 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열렬한 응원은 그 엄청난 열기에도 불구하고 상대국에 대한 적의나 폭력 없이 순수하게 축구를 향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화려한 축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축구팬들은 한국의 팬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삐딱한 한 FIFA 관계자의 반박

“2002 한일월드컵 개최가 확정됐던 지난 1996년에는 어마어마한 국민적 호응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차량에는 2002 한국월드컵 개최를 기원하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여져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도 2002 월드컵 유치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민적 관심사는 극에 달했었죠. 월드컵도 월드컵이지만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져서는 안 된다는 의식도 대단했습니다. 전국민이 월드컵 개최를 위해 똘똘 뭉쳤었어요.

하지만 2022 월드컵 개최지 선정이 불과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현 상황은 다릅니다. 1996년 당시에는 산골 할머니부터 유치원생까지 월드컵 유치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실제로 많은 이들이 2022 월드컵 개최에 한국이 뛰어들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월드컵 유치가 FIFA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싸움이지만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FIFA 관계자들을 설득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2002 한일월드컵은 최근에 치러진 월드컵 중 가장 관중수가 적었습니다. 한국 경기를 제외하고는 빈자리가 많았어요. 당신들 축제 만들어주려고 월드컵 개최하는 거 아닙니다. 재반박할 말씀 있으신가요?”

2. 2002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유치위원회의 주장

“한국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서울을 비롯한 10개 경기장에 고양과 천안을 포함해 12개 경기장 선정 작업을 마쳤습니다. 이들 도시와 경기장은 여러 차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 낸 시설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제대회 개최 경험이 미숙하거나 기반시설을 새로이 갖춰야 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관중과 선수들의 편의를 문제없이 완벽하게 제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 삐딱한 한 FIFA 관계자의 반박

“1996년의 한국 축구는 열악했어요. 축구 전용구장은커녕 제대로 된 잔디 구장도 찾기가 어려웠죠. 누런 잔디를 가리기 위해 그라운드에 녹색 페인트를 뿌릴 정도였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유산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FIFA 입장으로서는 한국이 월드컵 개최로 축구 인프라가 살아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었어요. 한국은 2002 월드컵 개최로 전국에 무려 10개의 최신식 월드컵 경기장을 짓게 됐고 이제 웬만한 전국 규모의 중·고등학교 축구대회도 이곳에서 열릴 정도로 2002 월드컵 개최를 통해 많은 걸 얻었습니다.

하지만 2022 월드컵은 FIFA 입장에서 한국에 남길 유산이 별로 없어요. 2002 한일월드컵 때 사용했던 경기장 10곳을 모두 다시 쓰고 거기에 고양과 천안 경기장을 개·보수해 사용할 방침을 굳혔다고 했죠? FIFA는 월드컵 경기장을 신축해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한 차례의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인프라를 훌륭히 갖춘 곳에서 또 다시 월드컵을 연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재반박할 말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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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 한국-에콰도르 친선경기에서 붉은악마 응원단이 2022년 월드컵 유치를 다짐하며 대형현수막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 20년 만에 또?

◆유치위원회의 주장

“한국은 수많은 국제대회를 개최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2002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훌륭한 기반시설과 풍부한 대회운영경험을 모두 갖춘 한국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할 자신이 있습니다. 2002 월드컵은 한일 공동개최였고 결승전도 일본에서 열렸기 때문에 반쪽 월드컵이었습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주도하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온전한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삐딱한 한 FIFA 관계자의 반박

“역대 월드컵 중 20년 안에 두 차례 월드컵을 개최한 곳은 멕시코 단 한 나라뿐입니다. 1970년 월드컵을 개최했던 멕시코는 1986년 다시 월드컵을 개최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당시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콜롬비아가 1982년 경제 사정으로 인해 1986년 월드컵 개최권을 반납하게 되면서 멕시코가 대타로 1986년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것이죠.

한 국가에서 20년 동안 두 번이나 월드컵을 연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앞서 말했다시피 월드컵이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아시아 최초 월드컵이 2002년에 처음 한국과 일본에서 열렸는데 그 다음 아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도 한국이 개최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2002 한일월드컵이 반쪽 월드컵이라는 건 당신들의 입장에서일 뿐입니다. 재반박할 말씀 있으신가요?”

4. 불안한 한반도 정세

◆유치위원회의 주장

“한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은 세계평화를 위해 축구가 그러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2022년 대회에서 한국이 개최국으로 선정된다면 몇몇 경기를 북한에서 유치할 수 있도록 협상하는 방안이 검토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과의 긴장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 북한 축구계를 세계축구의 주류로 끌어들이면서 ‘문호개방’을 위한 자연스럽고도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삐딱한 한 FIFA 관계자의 반박

“그것도 다 남과 북이 사이가 좋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천안함 사태와 같은 남북간의 긴장 상태가 이어진다면 월드컵이 세계평화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 긴장 속의 악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척 불안합니다. 만약 지금 이곳에서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하죠? 당신들의 이같은 주장은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해결해야 타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재반박할 말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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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22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위원회 한승주 위원장과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회장 등 우리나라 대표단이 스위스 취리히 소재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에게 2022년 월드컵 유치신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5. 아시아의 축구 대국?

◆유치위원회의 주장

“한국은 7번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이룬 국가는 기나긴 월드컵의 역사에서도 오직 5개국(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뿐입니다. 또한 K-리그의 프로팀들은 아시아 클럽챔피언십 대회 6회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강팀임을 여러 차례 증명했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단독개최를 통해 아시아 축구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국뿐입니다.”

◆아주 삐딱한 한 FIFA 관계자의 반박

“자국 리그 경기의 방송 중계도 없는 나라가 축구 대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유럽 축구는 언제든 텔레비전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면서 자국 리그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경기는 다른 나라 인터넷 중계로 보는 나라가 축구 대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바르셀로나가 내한한다고 해 자국 리그 일정까지 연기하고 올스타팀을 구성해 맞대결 펼치는 나라가 축구 대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승격팀이 승격 거부하는 나라가 축구 대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축구팀이 팬들 무시하고 연고지 옮기는 나라가 축구 대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재반박할 말씀 있으신가요?”

6. 우리 모두 늙는다

◆아주 삐딱한 김현회의 불만

2022년, 나이 41살 먹고 서울광장에서 응원할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시울이 불거진다. 그때는 2002년생 여성들이 아마 “아저씨, 경기 안 보이니까 그 대머리 좀 치워요”라고 나에게 말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힘들게 준비한 월드컵을 다음 세대들이 신나게 즐긴다면 살짝 배 아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2002 월드컵 유치전에서 뒤늦게 뛰어들었음에도 일본과 공동 개최에 성공했다. 패배가 당연해 보였던 결과를 공동 개최로 끌어냈다는 건 절반이상의 성공을 의미했다. 이번 2022 월드컵 유치전도 판세는 다소 불리해 보인다. 이 판세를 뒤집고 또 다시 월드컵 개최를 이뤄낼 수 있길 기원한다. 물론 내가 위에 재기한 것들에 대해서는 막힘없이 답변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 오늘 조금 미워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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