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스타’ 안정환 은퇴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보
‘비운의 스타’ 안정환 은퇴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본문
http://blog.donga.com/laputa4/archives/404 글을 옮겨서 적었어요
‘비운의 스타’ 안정환
안정환 선수가 은퇴했습니다. 31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회견을 TV로 보는데, 왠지 그가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벌써 나이도 30대 중반이고 나름의 족적도 남겼기에 저는 그가 당당히 은퇴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그의 낯빛에는 아쉬움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났습니다. 그의 선수생활 역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저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안정환은 대스타에게 꼭 필요한 실력, 외모, 쇼맨십 같은 3박자를 모두 갖춘 드문 선수였습니다. 그에게는 늘 ‘뭔가’가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흥분도, 2006년 첫 원정 승리(토고전 역전골)에도 그가 있었습니다. 지고 있을 때도 교체선수로 들어가면 공격이 활발해 졌습니다. 뭔가 일을 낼 것 같은 기대감을 늘 주곤 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도 ‘테리우스’도 가장 어울리는 애칭같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비운의 스타’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에 비해 참으로 불운했습니다. 그의 축구인생은 도전과 성공, 그리고 불행이 늘 번갈아 반복됐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은퇴했습니다. 31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회견을 TV로 보는데, 왠지 그가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벌써 나이도 30대 중반이고 나름의 족적도 남겼기에 저는 그가 당당히 은퇴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그의 낯빛에는 아쉬움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났습니다. 그의 선수생활 역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저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안정환은 대스타에게 꼭 필요한 실력, 외모, 쇼맨십 같은 3박자를 모두 갖춘 드문 선수였습니다. 그에게는 늘 ‘뭔가’가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흥분도, 2006년 첫 원정 승리(토고전 역전골)에도 그가 있었습니다. 지고 있을 때도 교체선수로 들어가면 공격이 활발해 졌습니다. 뭔가 일을 낼 것 같은 기대감을 늘 주곤 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도 ‘테리우스’도 가장 어울리는 애칭같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비운의 스타’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에 비해 참으로 불운했습니다. 그의 축구인생은 도전과 성공, 그리고 불행이 늘 번갈아 반복됐습니다.
<불운한 어린시절>
화려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안정환은 자신의 가족사를 자극적으로 다룬 언론 보도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기 싫었다”라고 밝힐 만큼 큰 충격을 받기도 했죠.
초등학교 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었고, 옷이 한 벌밖에 없어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고 합니다. 축구를 시작한 이유도 배고픔 때문이었습니다. “축구부에 들어오면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축구부로 찾아갔습니다.
중·고교 시절엔 합숙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막노동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언론 인터뷰에선 농반진반으로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5호선 목동역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열심히 내 손으로 목동역을 지었다.”
<대학축구와 K리그를 이끌고 이탈리아 진출>
한국축구계의 양대라인인 연,고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는 조건으로 아주대를 택했고 팀을 대학 최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199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한 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날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이동, 대학축구연맹전 결승에서 두 골을 넣은 건 이젠 전설 속 이야기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부산대우에 입단하지만 가족의 빚을 갚느라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대 말, 그는 ‘라이언킹’ 이동국, ‘앙팡테리블’ 고종수와 함께 K리그의 중흥을 이끕니다. 3명의 스타 선수가 혜성같이 등장한거죠. 1999년 부산대우는 50만에 육박하는 관중을 불러모았고, 준우승 팀 최초로 리그 MVP를 거머쥔 선수가 됐습니다. 실력과 상품성에서 최고의 K리그 선수였고, 이를 발판삼아 이탈리아 페루자로 날아갔죠.
하지만 이탈리아 생활은… 동양인 선수로서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페루자는 나타카 히데토시 영입 이후 일본인들이 티셔츠 구입 등 눈에 띄게 구단 매출을 올려준 것과 같은 기대로 안정환을 영입했던 것이죠. 결국 그는 실력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5번째 출장 게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로 데뷔 첫 골을 넣고 다음 게임에서 연속골, 우디네세 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다시 시작된 불운>
운이 트이는가 싶었지만, 한국축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된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이 어이없게도 안정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골든골을 넣은 덕분(?)에 괘씸죄에 걸려 페루자에서 방출됐죠. 당시 이탈리아는 16강 전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나빴습니다. 페루자 구단주가 “샌드위치도 살 돈도 없는 놈을 키워줬더니 배신했다”며 국영방송에 나와 떠들기도 했죠.
살해 협박이 이어지고 실제로 그의 차가 불타기도 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서둘러 짐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불행이 겹칩니다. 프리미어리그 블랙번과 협상이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페루자 측에서는 임대 후 완전 이적조항을 앞세웠고 안정환을 노렸던 프리미어리그 여러 구단들이 괜한 분쟁을 우려해 발을 뺐습니다. 엎친데 덮진격으로 페루자와 부산아이콘즈의 분쟁 때문에 안정환은 몸값이 점점 떨어졌고 문제는 FIFA 제소로 이어졌죠. 결국 FIFA는 페루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안정환 측이 페루자에 380만 달러(한화 약 35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35억 원을 못 갚으면 어떤 곳으로도 갈 수 없는 처지. 페루자에서 두 시즌 동안 연봉 13억 원을 받은 안정환은 이 중 대부분을 어머니 빚 갚는데 쓴 터라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지만 35억원이라는 거액에 모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 일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연예기획사에서. PM이라는 일본 연예기획사는 페루자에 35억 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안정환과 계약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PM과 손을 잡아야 했고, 이렇게 일본 연예기획사 소속의 연예인(?)이 됐습니다.
<유럽에 재도전>
PM은 안정환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J리그로 진출과 함께 시즌이 끝나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출연에 이용했죠. 당연히 일본에서 본전을 뽑아야 하는 PM은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구단의 입단 제의를 모두 거절했고 최전성기에 있던 안정환은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3년 동안 뛰어야 했습니다. 결국 3년 만에 요코하마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35억 원을 다 갚고 홀가분한 신세가 됐지만 나이는 이미 서른 줄로 접어들었습니다.
당시 나고야가 30억 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했지만 그는 뒤늦게라도 유럽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액을 거절하고 프랑스 FC메츠로 갔습니다. 연봉은 고작 8억.
3년 만에 유럽 무대로 복귀했지만 메츠가 리그 최하위로 남자 6개월 뒤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로 이적했습니다. 하지만 뒤스부르크 또한 리그 최하위로 강등되자 계약을 해지한 후 반 년 동안 무적 상태로 지내다가 2007년 K리그 수원에 입단, K리그에 7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불운의 반복>
수원 시절에는 2군 경기에 나서 가족에 대해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내뱉은 상대팀 팬과 충돌해 벌금 1천만 원의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비난도 묵묵히 감수해왔지만 차마 가족을 욕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지네딘 지단이 독일월드컵 결승에서 누이를 욕하는 이탈리아 선수에게 박치기 한 일도 있었죠.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 진입해 팬과 충돌한 안정환은 벌금을 내고 사과문을 썼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켰던 팬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부산과 다롄을 거쳐 그는 조용히 은퇴했습니다. 비운의 스타는 안정환 말고도 여러 선수의 수식어였습니다. 황선홍이 그랬고, 이동국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첫골을 넣는 등 한풀이를 했고, 이동국은 지금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화려하게 부활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불운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가 화려한 마지막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걸 요구하기에는 그가 너무 지쳐보입니다. 기자회견장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은 쓸쓸해보였습니다. 안정환 선수.. 아니 안정환씨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의 불운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가 화려한 마지막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걸 요구하기에는 그가 너무 지쳐보입니다. 기자회견장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은 쓸쓸해보였습니다. 안정환 선수.. 아니 안정환씨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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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안타깝네요...
제 2의 인생에서 안정환의 화려한 재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 2의 인생에서 안정환의 화려한 재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 마음 속에는 '영웅' 안정환입니다 ㅠ 인생의 2막은 부디 행복으로 가득하길 ㅠㅠㅠㅠㅠ
안정환 멋지긴 멋지죠 ~

비운의 스타는 아니지 않나요?
2002년때 한창 떠서 CF도 찍고 잘나갔었는데 ㅎㅎ
2002년때 한창 떠서 CF도 찍고 잘나갔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