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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 기자] 며칠 전 퇴근 무렵 아내한테 딸아이 수학 문제집을 사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무슨 기본원리를 사오라고 했다며 내일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잊지 말라는 당부까지 한다.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이다 '기본 원리'라고 쓰여 진 책 대신 한 단계 높은 '발전 응용'이라는 책을 사가지고 갔다. 아이의 골난 표정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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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에 대해 읽고 쓰는 방법을 예시해 놓은 것
ⓒ2006 김현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3학년 때도 기본 대신 응용을 사다준 아빠의 배려 아닌 배려 때문에 딸아이는 울상을 지었다. 이번엔 아마 작년보다 더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또 한 번의 배려를 하기로 한 것이다. 책을 보여주자 역시나 딸아이는 금세 눈물까지 글썽이더니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또 응용이야. 나 이거 풀기 싫어. 왜 나만 응용이야. 친구들은 다 기본인데. 쓰는 거 많아서 이거 싫단 말이야 싫어."

그때 마다 난 딸아이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이번에도 그걸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야, 딸! 이건 네 수준이 높아서 산 거야. 아빠가 네 수준을 낮춰 보면 좋겠니?"
"그래도. 나 이거 싫어. 쓰는 게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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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건 좋은데... 으휴~ 이걸 언제 읽고 쓰지. 끝이 없네.
ⓒ2006 김현
이렇게 한풀 꺾인 틈을 타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면 딸아이는 '아빠 미워' 한 마디 하곤 현실을 수긍하곤 했다. 그러다 오늘 저녁을 먹고 아들의 공부 좀 봐주고 나서 딸아이에게 수학 문제집 좀 꺼내라 하니 풀기 싫다고 투덜댔다.

"아빠가 한 번 해 봐. 글씨 쓰기가 얼마나 징그러운가."
"야, 글씨 쓰는 게 뭐가 징그러워. 그것도 수학 문제인데. 아빠가 봐줄게 한 번 가지고 와 봐."

딸아이가 가지고 온 문제집을 잠시 살펴보는데 숫자 보기가 어지럽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보지도 않고 읽어 보지도 않던 숫자들이 종이 위에 박혀있는데 '억'을 지나 무슨 '조'까지 쓰여 있다. 숫자 밑에 한글로 쓰인 글자를 보니 일조도 아닌 천조이다. 지금까지 1억을 만져보기는커녕 보지도 못한 나에게 '조'라는 단어는 낯설어 보였다.

"야, 이게 다 뭐야? 조라니, 조가 뭐야?"
"조가 뭐긴. 아빠는 그것도 몰라. 천억 다음이 조인데."
"그러니까 그 조가 뭐냔 말이야. 그리고 너희가 조를 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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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짜증내며 풀었던 문제
ⓒ2006 김현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말을 낚아채더니 한 마디 거든다.

"왜 배우긴, 책에 나와 있으니 배우지."

남편의 우문에 대한 아내의 현답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누가 그걸 몰라서 물은 건가. 무슨 은행원도 아니고, 금감원 직원도 아닌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억도 아닌 조를 배우게 해서 뭐하자는 말이지. 그리고 딸아이로 하여금 글씨가 쓰기 싫다고 하게 하는 주범이 바로 이놈이었던 말인가? 내 생각을 알기나 한 듯 아내도 숫자를 몇 번 세어보더니 이내 포기를 하고 만다.

"그럼 조 다음엔 뭐야?"
"조 다음엔 경이지. 아빤 그것도 아직 몰라."
"그래 아빤 모르겠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럼 조는 영이 몇 개인지 아니?"
"알지. 조는 영이 12개고, 경은 16개야."

딸아이는 묻지도 않은 '경'의 동그라미 숫자까지 말한다. 숫자 감각이라곤 젬병인 내게 동그라미 12개니 16개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도 않은 '조'라는 단위를 초등학교 4학년 수학책에서 보고 읽어보다니 감사해야 할 지, 아님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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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구먼
ⓒ2006 김현
공부를 함께 하자고 했던 아빠는 투덜대기만 하고, 딸아이는 오히려 아무 말 없이 끙끙대며 숫자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어린 초등학생에게 개념도 서기 어려운 숫자 단위를 배우게 해야 하는지. 요즘 로또 복권 당첨금이 보통 몇 억 하니 억 단위야 이해한다 치더라도 조 단위까지 익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쌓이기만 했다.

아주 훌륭하신 분들이 생각해낸 것이라 교사들은 교과서에 나온 대로 가르치고,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동그라미 숫자를 외우며 배우면 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왜 이런 걸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혹, 일조, 백조, 천조라는 상상의 단위를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심어 주어 아이들을 미래의 훌륭한 경제적 인간으로 키우려 했다면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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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네 자라마다 ,를 찍으면 숫자 읽기 정말 쉽죠

아직도 세 자리마다 ,를 찍어서 읽어 대느라고 고생하는 국민들......
500원짜리 동전을 은행에서 바꿔주지않는 시대가 아닙니까?

높은 숫자만 배워야하는 어린이들도 시대에 적응하려면 필요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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