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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황당한 일 - 실화입니다. 정보

꽁트 - 황당한 일 -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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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세찬 날이다.
부서지듯 흩날리는 이파리들을 보며 차한잔을 마시다 보니
문득 몇년전 친구와의 약속이 어긋나서 겪은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일이 생각난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는 일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겠지만
그날 겪은 일은 동호회 회원들에게 널리 회자되어
아주 오랫동안 술자리의 안주감이 되기도 했었다.

동호회 회원중에 같은 계통에 일하는 가을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메일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가끔씩 전화를 통해 근황을 주고 받던 친구였는데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같은 디자인업체를 운영한다는 동질성으로 인해
아주 가까운 벗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친구였다.
서로 얼굴도 모른채 글로만 정을 쌓아가던 어느날  
그친구가 나의 사무실 가까운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왔다.
여러가지 일로 바쁜터였기에 전화번호와 위치만 확인하고는
그 친구도 나도 서로의 사무실을 방문하지 못한채 한달이 지날 즈음...
그러니까 7년전 오늘 무렵이었다.

이러다간 한동네 살면서 길에서 마주쳐도 그냥 지나갈수도 있겠다 싶어
친구와 나는 약속을 정했다.
그 다음날이 마침 시간이 비었기에 내가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친구가 전화로 알려주는 사무실 위치는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이었지만
나는 꼼꼼하게 메모까지 하면서 받아 적었다.

"응..뭐라구? 그래..광진구청 지나서 구의 사거리에서 천호대교 가는 큰길로 가다보면
구의시장 나오지.. 그래..그 길 잘알아"

친구는 혹시 못찾아 올까봐서 자세하게 설명했고 나는 열심히 메모를 했다.

"응, 구의시장 지나면 구의역으로 나가는 사잇길 있고, 그길 지나서 100미터쯤이라구?
알았어. 1층에 트라이매장 있는 건물이란 말이지?
혹시 그건물 옛날 [진웅]이라는 회사 사옥아냐?
그래..잘알지..옆엔 이삿짐센타가 있고 사무실 앞에 출력용 시트지가 쌓여 있다구?  
알았어, 이따가 보자구"

옛날 거래처가 있던 건물이었기에 그정도면 눈감고도 찾아갈수 있을것 같았다.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하고는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섰다.
걸어서도 10분이 안걸리는 거리였다.
친구가 말한 건물앞에 닿으니
전에 안보이던 디자인회사가 입주하였는지 화려한 간판에 출력용 종이가 쌓여 있었다.

'이친구 구멍가게 수준이라더니 엄청 크게 벌렸군'

그 규모에 감탄하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이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다.
사장님 친구인데 사전 약속이 되어 있다면서 내 명함을 건네 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오면서 악수를 청했다.

"야! 오랫만이다, 아니지 첨이구나..어서와 반갑다야!"

그의 반김에 서먹하던 감정이 사라지며 나도 마주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되니? 구멍가게 수준이라더니 엄청난 규모라서 놀랐어"

사장실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들었던 그 친구의 근황과는 차이가 있었다.
실사출력 업체로는 우리나라에서 세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며,
돈을 아주 많이 벌어 분당에 땅을 3천평 사뒀더니
몇배로 올랐다는 말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사오고 나니 더 바빠져서 친구들과 통화도 잘 못하다며
그가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다며 말했다.

"나도 가끔씩 들어가지만 요즘 다들 바쁜지 동강이도 안보이고
통신상에서 친구들 보기 힘들더라"

동강이는 나와도 절친한 같은 동호회 친구였다.  
둘이서 동호회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그가 물었다.

"요즘 디자인 계통이 힘드는 시기인데 일은 어떠니?"

열심히는 뛰고 있지만 그저 그렇다는 내말에 그가
자기 주변의 업체들을 힘껏 연결시켜 보겠다며 청하지도 않은 약속을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시계를 본 그가
약속이 있다면서 다음에 시간을 잡자면서 먼저 일어서려고 했다.
순간 불쾌한 기분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점심약속을 지키려고 다른일 젖혀두고 찾아온 친구를 두고
약속이 있다면서 일어서려고 하다니...
괘씸한 생각도 들고 평소 전화나 메일을 통해 느꼈던 푸근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색은 않았지만 돌아 오는 길에는  
가까이 간직했던 인연의 가지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일이 있은 뒤 일주일이 지났을까,
잠깐 짬을 내어 들른 동호회 게시판에 그친구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친구 돌밭이(나) 자기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해놓고 오지 않아서 기다리느라
일주일째 점심을 굶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부아가 치밀고 있는데 마침 그친구가 전화를 했다.

"이 사람아, 10분이면 온다더니 일주일이 지나도록 왜 안오고 사람 기다리게 하는거야?"

대뜸 그 친구가 한 말이었다.

"뭔 소리야? 찾아간 사람 소 닭 보듯 한 사람이 누군데.."

다시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볼멘 소리로 내가 되받았다.

"소 닭보듯 하다니?
자네 오면 같이 점심 먹으려고 직원들까지 점심 거르면서 기다렸는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격으로 그 친구가 더 기가 막혀 하며 언성을 높혔다.

"약속이 있으니까 다음에 시간 만들자며? 근데 지금 와서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친구가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을 끊더니

"그날 우리 사무실에 왔었단 말이지? 왔는데도 내가 약속 있다며 일어 났단 말이지?"

다짐하듯 친구가 말했다.

"이사람아, 그럼 내가 가지도 않고 생트집을 잡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나?"

"그게 아니라 그날 직원들에게도 앞으로 가까이서 도움 많이 줄 친구라고 이야기 하고
함께 기다렸는데...."

거기까지 말한 친구는 내가 들렀다는 사무실 위치를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익히 알고 있는 건물이기에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불러주었다.

"그러니까 진웅빌딩 옆의 이삿짐센타 건물에 있는 [가을기획]이라는 사무실을
분명히 들러서 차만 마시고 갔단 말이지?"

친구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어, 그새 상호를 바꿨어? [가을기획]이 아니라 [대진기획]이던데?"

그러자 전화기를 타고 친구의 어이없어 하는 웃음이 폭포처럼 쏟아 졌다.

"뭐? [대진기획] 사무실에 들러서 차를 마시고 갔단 말이지?
푸하하!! 이친구야,
거긴 우리 경쟁사 사무실이고 내 사무실은 바로 그옆 사무실이야"

나는 말문이 막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내가 갔던 곳이 친구의 사무실이 아니었으면
명함을 보고 반색을 하며 나와서 한시간이나 이야기 한건 누구란 말인가?
더구나 [동강]이며 동호회 친구들의 이름이 일치하는건 어떻게 된거란 말인가?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는
아마도 그가 같은 동호회의 내가 모르는 회원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동호회에 워낙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몰라도
그는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가워 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낮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전국적으로 1200명이 넘는 동호회였지만 동갑내기 친구들은 100명도 채 되지 않았고
내가 리더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회원이라는건 있을 수가 없었다.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다시 점심 약속을 하고 그친구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에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 [대진기획]이라는 그 사무실에 들러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그는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가 먼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지난번엔 경황이 없어 확인을 못 했는데 가고 나서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날 바쁜일이 있어서 점심도 같이 못한건 미안한데, 근데......대체 누구세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고는 기가 막혀 하는 그와  둘이서 허리가 끊어져라 웃었다.
그도 동호회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천리안이 아닌 나우누리에서 활동하는데 나이도 네살이나 아래였다.
공교롭게도 그도 동호회 회원중에 같은 디자인회사를 경영하는 친구가 있으며
나하고 이름도 같은데 아직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힌건 회원중에 [동강]이라는 별명을 쓰는 회원도 있다는 거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야 더러 있겠지만
그렇게 여러가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우연으로 인해
나는 졸지에 생판 연고도 없는 남의 사무실에 가서
한시간이나 뜬구름 잡는 이이야기를 하다가
점심 같이 안했다고 심통난 삼룡이(?)가 되어 버렸다.
그와 웃다가 그 옆 사무실을 바라보니 이삿짐 센타가 하나 더 있었고
그 옆에 [가을기획]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 사무실 앞에도 출력용 시트지가 쌓여 있었는데
첫눈에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내가 내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졸지에 친구 점심 대접도 않고 보낸 불한당으로 몰렸던 그 친구였다.
친구와 악수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미리 시켜 놓은 점심을 앞에 두고 직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느라 일주일째 점심 굶은것 아시죠?"

실장의 말에 왁자한 폭소가 터졌고 나도 멋적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길 좋아하는 그 친구가 그런 기상천외한 이야기거리를
혼자만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희망사항이었나 보다.
다음날 동호회 게시판엔
그 이야기가 3편까지 줄줄이 올려지고
그날 같이 먹은 점심의 메뉴가 증거로 나열된 에필로그까지 덧붙여지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바람에 나는 동호회 친구들을 만날때마다
"요즘은 길 잘 찾아다녀?" 라는 말을 인사처럼 들어야 했다.

거기다 동호회의 모임 공지시엔 꼭 사족으로 추가 되는 주의 사항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전회원必 주의사항
돌밭님과 가까운 곳에 계신 회원께서는 반드시 갈밭님을 챙기셔서
돌밭님이 엉뚱한 곳에서 생떼쓰며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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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개

얼마 전에도 그 친구와 부부동반하여 저녁겸 술을 마셨는데
친구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여인네들 앞에서 다시 삼룡이가 되어 버렸습니다..ㅠ.ㅠ
치매 초기 증세 같사옵니다.빠른 조기 치료 요합니다^^ㅋ

고스톱 칠때 뻑~해노코 왜 뻑 했는지 모르시지는 않습니까?
고스톱 거의 안칩니다.
정말 뮤료할 땐 그나마 할수 있는 게임이 그뿐이라서 가끔 하지만
제가 뻑한건 기억 못해도
남이 뻑한건 잘 기억 하옵니다...^^
그리고 의사 친구가
저는 치매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사옵니다.
날마다 머리에 쥐나는 사람은 거릴려고 해도 안걸린다고 하옵니다..^^
저도 아직 못봤습니다.
해준것도 없이 이준기가 싫어서요.
친일파가 좋다며 어쩌구 하는 바람에 그냥 싫더군요.
© SIR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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