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호텔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323m 높이 치솟은 콘크리트 피라미드. 버드나무가 많아서 유경이라고 했던 평양의 옛이름을 딴 ‘류경호텔’의 외양이다. '백공오 호텔'이라고도 불리는 105층의 이 건물은 여전히 북한의 골칫거리다.

 

1987년 프랑스의 기술과 자본으로 착공돼 92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점차 지연되다가 외부골조만 완성된 채 92년경에는 공사가 완전히 중단돼 버렸다. 약 60% 완료된 상태다. 4억달러 이상의 외화와 연인원 1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으나 추가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90년대초 주택 2만호 건설계획과 겹치면서 노동력 확보도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총 부지면적 43만㎥, 건축면적 36만㎥, 하단부 건물폭 160m. 경사각은 75도다. 객실 3700개, 2000석 규모의 대회의장과 연회장, 프레스센터 등 동양 최대 규모의 건축물로 탄생하기로 돼 있었던 이 호텔의 운명은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은 홍콩, 싱가폴, 중국 등 굴지의 외국 기업들과 꾸준히 교섭하면서 건축 재개를 도모해 오고 있다. 96년에는 남포에서 남북합작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대우그룹에 이 호텔 건설사업을 제의하기도 했다.

 

북한은 96년 10월에 열린 세계무역센터협회 총회 이사회에 조건부로 가입하면서 류경호텔 건설을 마무리해 '무역센터'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추가 건설비용이 최소 3억 달러 이상 필요하지만, 외자 도입이 쉽지 않았다.

 

96년 일본 산케이신문은 “류경호텔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지만, 자세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평양을 다녀온 많은 목격자들은 도시의 외관을 해치는 이 미완성 건물을 ‘유령호텔’이라며 눈총을 준다. 이런 요인들도 투자를 꺼리게 한다고 볼 수 있다. 94년 류경호텔 객실 1000개에 대한 임대사업권을 따낸 부동산 중개사업자 강영수(주 코리아랜드 대표)씨는 "류경호텔의 골조는 대단히 튼튼하다. 공사용 엘리베이트가 꼭대기층까지 가동되는데 조금이라도 기울어진다면 엘리베이트가 올라갈 수 없다"면서 보도 내용을 반박해 왔다.

 

문제는 구조물 자체의 결함보다 이 대규모 건물이 어떻게 쓰여질 수 있을 것인지 그 용도의 불확실성에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이 건물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통치자의 권위를 위해 계획되었다. '남한의 63빌딩은 물론이고 동양 최고를 지향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을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에 헌정하기 위해서 착공되었고, 이런 구상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광폭정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전되기도 했다. 김일성 60회 생일에는 전체 대리석으로 된 혁명박물관이, 70회 생일에는 170m높이의 주체사상탑과 개선문이 완공된 바 있다.

 

타워 크레인도 없이 한층 한층 쌓아 올라간 유경호텔은 돌격대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가능했다. 이들의 '충성심'과 달리 투자와 회수를 엄정하게 따지는 자본의 논리는 냉혹해 프랑스 기술진이 빠져나간 후에도 선뜻 이 대규모 공사를 떠맡을 해외자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특급 고려호텔에서 방을 구하기 힘들다거나 북경에서 평양행 비행기표를 구하기 어렵다는 최근의 '평양 러시'가 계속되면 류경호텔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의 계획대로 류경호텔이 무역센터로서의 체모를 갖출 수 있고, 투자 전망이 확실하다면 건설 재개를 위한 외국 기업들의 진지한 탐색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