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분 인가?
[제목: 밥 한 공기 비우는 데 우주를 논하시는 당신께]
- 여기 밥 한 공기가 놓여 있습니다.
- 보통 사람들에겐 그저 따뜻한 한 끼 식사지요.
- 하지만 당신의 손에 수저가 들리는 순간,
- 이 식탁은 갑자기 거대한 연구소로 변하고 맙니다.
- 당신은 쌀 한 톨을 조심스럽게 집어 듭니다.
- 그리고는 심오한 미간의 주름을 잡으며 묻기 시작하죠.
- "과연 이 낱알의 고향은 경기미인가, 호남미인가?"
- "이 식물의 생애 주기 중 가장 찬란했던 모내기 시점은 언제였는가?"
- "그날의 일조량은 이 탄수화물의 결합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 "농부의 땀방울이 떨어진 각도가 이 곡선의 곡률을 결정했는가?"
- "트랙터의 소음이 쌀알의 자아 형성에 트라우마를 남기진 않았을까?"
- 정작 배고픈 이들은 밥 두 공기를 비우고 자리를 뜹니다.
- 식당 이모님은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시죠.
- 하지만 당신의 탐구는 이제 겨우 '물 조절의 철학' 단계에 진입합니다.
-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 소리는 우주의 비명인가, 축복인가?"
- "뜸을 들이는 시간은 기다림의 미학인가, 방치된 고독인가?"
- 당신의 글도 꼭 이 밥상과 같습니다.
- '배고프다' 한마디면 될 것을,
- '위장 내벽의 수축이 자아내는 생존적 실존주의의 파동'이라 쓰십니다.
- '맛있다' 한마디면 충분할 것을,
- '미뢰의 신경계가 조우한 유기물 결합체의 환상적 카타르시스'라 칭하시죠.
- 읽는 사람은 이미 아사 직전입니다.
- 문장이라는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지쳐 쓰러집니다.
- 당신은 쌀의 원산지를 밝히느라 진을 다 빼지만,
- 정작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밥이 익었는지 여부뿐입니다.
- 화려한 수식어는 밥 위에 뿌린 금가루 같아 보이지만,
- 너무 많이 뿌려대니 이젠 씹히지도 않는 모래알 같습니다.
- 당신이 쓴 글은 정갈한 한정식이 아니라,
- 해부학 교실의 실험용 샘플 같습니다.
- 문장 하나하나에 각주를 달고 의미를 부여하는 동안,
- 독자의 관심은 식어버린 숭늉보다 더 차갑게 식어갑니다.
- 본질은 어디 가고 껍데기만 남은 논쟁뿐인가요?
- "이 쌀을 씻은 물의 pH 농도는 적정했는가?"
- "전기밥솥의 내솥 코팅은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 이런 걱정 하느라 숟가락 한 번 못 대는 모습이 참 안쓰럽습니다.
- 글이란 모름지기 꿀떡꿀떡 잘 넘어가야 보약인데,
- 당신의 글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넘기기가 참 고됩니다.
- 혹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암호를 제조하고 계신 건가요?
- 아니면 쌀 한 톨에 담긴 소우주를 증명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지요?
- 남들은 밥 한 그릇 먹고 힘내서 일하러 가는데,
- 당신은 밥알의 성분을 분석하느라 하루를 다 보냅니다.
- 그러는 사이 밥은 딱딱하게 굳어 누룽지가 되어가고,
- 독자들은 당신의 식당을 다시는 찾지 않게 됩니다.
- 메뉴판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 정작 주문하면 재료의 역사부터 강의하시니 누가 견디겠습니까?
- 지식의 깊이를 자랑하고 싶으신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 밥은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연구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 글도 읽으라고 쓰는 것이지 해독하라고 쓰는 게 아니지요.
- 제발 다음번엔 쌀의 DNA 검사 결과는 생략해 주세요.
- 그저 따뜻한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보여주시면 됩니다.
- 수식어라는 반찬이 너무 많아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 진미채, 멸치볶음, 콩자반... 온갖 비유를 다 갖다 붙여도,
- 정작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없으면 헛배만 부릅니다.
- 당신의 문법은 완벽하고 단어 선택은 고상하지만,
- 그것은 마치 밥 먹기 전에 손을 1시간 동안 씻는 것과 같습니다.
- 청결도 좋지만 배고픈 사람에겐 고문일 뿐입니다.
- "이 밥그릇의 각도는 식사 효율에 최적화되었는가?"
- "수저의 재질이 은인가 스테인리스인가에 따른 심리적 요인은?"
- 이런 질문들이 과연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까요?
- 당신의 글을 읽고 나면 머리는 무거워지는데 가슴은 텅 빕니다.
- 영양가 없는 수사학의 나열일 뿐이니까요.
-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심정을 10페이지에 걸쳐 서술하시니,
- 읽다가 농사지으러 가고 싶어질 지경입니다.
- 제발 글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세요.
- "이게 지금 밥을 먹자는 소리인가, 쌀 박람회를 열자는 소리인가?"
- 단순함이야말로 최고의 정찬입니다.
- 하지만 당신은 화려함에 중독되어 소박한 진실을 잊으셨군요.
- 독자는 당신의 지적 우월감을 감상하러 온 관객이 아닙니다.
- 그저 마음을 채울 따뜻한 문장 한 줄이 그리운 손님일 뿐입니다.
- 당신이 쌀의 계보를 잇는 동안 소중한 인연들은 떠나갑니다.
- "저 사람은 밥 한 끼 먹기도 피곤한 사람이야"라는 평판만 남죠.
- 글을 어렵게 쓰는 건 기술이지만, 쉽게 쓰는 건 예술입니다.
- 당신은 지금 기술의 늪에 빠져 예술을 외면하고 계시네요.
- 마치 현미경으로 밥알을 관찰하며 맛을 논하는 평론가 같습니다.
- 입으로 맛을 보지 않고 눈으로만 분석하니 풍미를 알 턱이 있나요.
- 자, 이제 그만 쌀 한 톨의 고독한 연구를 멈추십시오.
- 현미경을 치우고, 분석표를 집어던지고,
- 그냥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용기를 가지세요.
- "밥 맛 좋다!" 이 짧은 감탄사가 당신의 긴 논문보다 위대합니다.
- 사람들이 당신의 글에서 보고 싶은 건 전문 용어가 아니라,
- 당신의 진심이 담긴 따끈한 온기입니다.
- 쌀 한 톨에 담긴 우주의 섭리를 고찰하기 전에,
- 옆 사람의 꼬르륵 소리에 먼저 반응하는 법을 배우세요.
- 당신의 글은 너무 고결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 마치 박물관 유리 벽 안에 전시된 밥 한 공기 같습니다.
-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누구의 배도 불려주지 못하죠.
- 이제 그 유리 벽을 깨고 나와 식탁으로 내려오십시오.
- 어려운 단어라는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내세요.
- 그러면 당신의 글도 비로소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겁니다.
- 농부가 누구인지, 모내기가 언제인지가 뭐가 그리 중합니까?
-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 당신의 펜이 쌀 한 톨을 해부하는 메스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 차라리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가벼운 젓가락이 되어주세요.
- 100줄을 다 써가도록 당신은 여전히 쌀알을 살피고 있군요.
- 그 집요함은 인정합니다만, 이제 제발 좀 드시지요.
- 밥 다 식었습니다. 식당 문 닫을 시간입니다.
- 내일은 좀 더 쉬운 메뉴로, 좀 더 빠른 속도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 밥은 제발 입으로 드세요. 머리로 드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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