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er

이런 기분 인가?

· 2026-06-12 (금) 00:53:22 · 227 · 1
[제목: 밥 한 공기 비우는 데 우주를 논하시는 당신께]
  1. 여기 밥 한 공기가 놓여 있습니다.
  2. 보통 사람들에겐 그저 따뜻한 한 끼 식사지요.
  3. 하지만 당신의 손에 수저가 들리는 순간,
  4. 이 식탁은 갑자기 거대한 연구소로 변하고 맙니다.
  5. 당신은 쌀 한 톨을 조심스럽게 집어 듭니다.
  6. 그리고는 심오한 미간의 주름을 잡으며 묻기 시작하죠.
  7. "과연 이 낱알의 고향은 경기미인가, 호남미인가?"
  8. "이 식물의 생애 주기 중 가장 찬란했던 모내기 시점은 언제였는가?"
  9. "그날의 일조량은 이 탄수화물의 결합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10.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11. "농부의 땀방울이 떨어진 각도가 이 곡선의 곡률을 결정했는가?"
  12. "트랙터의 소음이 쌀알의 자아 형성에 트라우마를 남기진 않았을까?"
  13. 정작 배고픈 이들은 밥 두 공기를 비우고 자리를 뜹니다.
  14. 식당 이모님은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시죠.
  15. 하지만 당신의 탐구는 이제 겨우 '물 조절의 철학' 단계에 진입합니다.
  16.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 소리는 우주의 비명인가, 축복인가?"
  17. "뜸을 들이는 시간은 기다림의 미학인가, 방치된 고독인가?"
  18. 당신의 글도 꼭 이 밥상과 같습니다.
  19. '배고프다' 한마디면 될 것을,
  20. '위장 내벽의 수축이 자아내는 생존적 실존주의의 파동'이라 쓰십니다.
  21. '맛있다' 한마디면 충분할 것을,
  22. '미뢰의 신경계가 조우한 유기물 결합체의 환상적 카타르시스'라 칭하시죠.
  23. 읽는 사람은 이미 아사 직전입니다.
  24. 문장이라는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지쳐 쓰러집니다.
  25. 당신은 쌀의 원산지를 밝히느라 진을 다 빼지만,
  26. 정작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밥이 익었는지 여부뿐입니다.
  27. 화려한 수식어는 밥 위에 뿌린 금가루 같아 보이지만,
  28. 너무 많이 뿌려대니 이젠 씹히지도 않는 모래알 같습니다.
  29. 당신이 쓴 글은 정갈한 한정식이 아니라,
  30. 해부학 교실의 실험용 샘플 같습니다.
  31. 문장 하나하나에 각주를 달고 의미를 부여하는 동안,
  32. 독자의 관심은 식어버린 숭늉보다 더 차갑게 식어갑니다.
  33. 본질은 어디 가고 껍데기만 남은 논쟁뿐인가요?
  34. "이 쌀을 씻은 물의 pH 농도는 적정했는가?"
  35. "전기밥솥의 내솥 코팅은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36. 이런 걱정 하느라 숟가락 한 번 못 대는 모습이 참 안쓰럽습니다.
  37. 글이란 모름지기 꿀떡꿀떡 잘 넘어가야 보약인데,
  38. 당신의 글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넘기기가 참 고됩니다.
  39. 혹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암호를 제조하고 계신 건가요?
  40. 아니면 쌀 한 톨에 담긴 소우주를 증명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지요?
  41. 남들은 밥 한 그릇 먹고 힘내서 일하러 가는데,
  42. 당신은 밥알의 성분을 분석하느라 하루를 다 보냅니다.
  43. 그러는 사이 밥은 딱딱하게 굳어 누룽지가 되어가고,
  44. 독자들은 당신의 식당을 다시는 찾지 않게 됩니다.
  45. 메뉴판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46. 정작 주문하면 재료의 역사부터 강의하시니 누가 견디겠습니까?
  47. 지식의 깊이를 자랑하고 싶으신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48. 밥은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연구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49. 글도 읽으라고 쓰는 것이지 해독하라고 쓰는 게 아니지요.
  50. 제발 다음번엔 쌀의 DNA 검사 결과는 생략해 주세요.
  51. 그저 따뜻한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보여주시면 됩니다.
  52. 수식어라는 반찬이 너무 많아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53. 진미채, 멸치볶음, 콩자반... 온갖 비유를 다 갖다 붙여도,
  54. 정작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없으면 헛배만 부릅니다.
  55. 당신의 문법은 완벽하고 단어 선택은 고상하지만,
  56. 그것은 마치 밥 먹기 전에 손을 1시간 동안 씻는 것과 같습니다.
  57. 청결도 좋지만 배고픈 사람에겐 고문일 뿐입니다.
  58. "이 밥그릇의 각도는 식사 효율에 최적화되었는가?"
  59. "수저의 재질이 은인가 스테인리스인가에 따른 심리적 요인은?"
  60. 이런 질문들이 과연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까요?
  61. 당신의 글을 읽고 나면 머리는 무거워지는데 가슴은 텅 빕니다.
  62. 영양가 없는 수사학의 나열일 뿐이니까요.
  63.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심정을 10페이지에 걸쳐 서술하시니,
  64. 읽다가 농사지으러 가고 싶어질 지경입니다.
  65. 제발 글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세요.
  66. "이게 지금 밥을 먹자는 소리인가, 쌀 박람회를 열자는 소리인가?"
  67. 단순함이야말로 최고의 정찬입니다.
  68. 하지만 당신은 화려함에 중독되어 소박한 진실을 잊으셨군요.
  69. 독자는 당신의 지적 우월감을 감상하러 온 관객이 아닙니다.
  70. 그저 마음을 채울 따뜻한 문장 한 줄이 그리운 손님일 뿐입니다.
  71. 당신이 쌀의 계보를 잇는 동안 소중한 인연들은 떠나갑니다.
  72. "저 사람은 밥 한 끼 먹기도 피곤한 사람이야"라는 평판만 남죠.
  73. 글을 어렵게 쓰는 건 기술이지만, 쉽게 쓰는 건 예술입니다.
  74. 당신은 지금 기술의 늪에 빠져 예술을 외면하고 계시네요.
  75. 마치 현미경으로 밥알을 관찰하며 맛을 논하는 평론가 같습니다.
  76. 입으로 맛을 보지 않고 눈으로만 분석하니 풍미를 알 턱이 있나요.
  77. 자, 이제 그만 쌀 한 톨의 고독한 연구를 멈추십시오.
  78. 현미경을 치우고, 분석표를 집어던지고,
  79. 그냥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용기를 가지세요.
  80. "밥 맛 좋다!" 이 짧은 감탄사가 당신의 긴 논문보다 위대합니다.
  81. 사람들이 당신의 글에서 보고 싶은 건 전문 용어가 아니라,
  82. 당신의 진심이 담긴 따끈한 온기입니다.
  83. 쌀 한 톨에 담긴 우주의 섭리를 고찰하기 전에,
  84. 옆 사람의 꼬르륵 소리에 먼저 반응하는 법을 배우세요.
  85. 당신의 글은 너무 고결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86. 마치 박물관 유리 벽 안에 전시된 밥 한 공기 같습니다.
  87.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누구의 배도 불려주지 못하죠.
  88. 이제 그 유리 벽을 깨고 나와 식탁으로 내려오십시오.
  89. 어려운 단어라는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내세요.
  90. 그러면 당신의 글도 비로소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겁니다.
  91. 농부가 누구인지, 모내기가 언제인지가 뭐가 그리 중합니까?
  92.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93. 당신의 펜이 쌀 한 톨을 해부하는 메스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94. 차라리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가벼운 젓가락이 되어주세요.
  95. 100줄을 다 써가도록 당신은 여전히 쌀알을 살피고 있군요.
  96. 그 집요함은 인정합니다만, 이제 제발 좀 드시지요.
  97. 밥 다 식었습니다. 식당 문 닫을 시간입니다.
  98. 내일은 좀 더 쉬운 메뉴로, 좀 더 빠른 속도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99.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100. 밥은 제발 입으로 드세요. 머리로 드시지 말고.
진짜 열심히 사시는구나 ....
총 4명이 반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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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2026-06-12 (금) 09:26:36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다양성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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