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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전오늘

10년전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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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아내의 깨우는 소리가 몽롱하게 들려온다. 핸드폰 알람도 때를 맞춰 울기 시작한다. 벌써 아침인가보다. 부지런한 아내는 감은 머리를 말리고 화장까지 끝낸 다음 나를 깨우는 거겠지. 따뜻한 이불 속에 조금만 더 누워 빈둥거리고 싶다.

오분만

이라고 말한지 1초도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알람이 또 한번 울기 시작한다. 일어나 아내는 한번 더 같은 말을 하고 이번엔 지운이 녀석을 깨운다. 지운이는 발딱 잘도 일어난다.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다리를 접고 앉아 퉁퉁 부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녀석은 이내 쪼르르 밖으로 달려나간다. 일어나자마자 빠방빠방을 외치며 TV에 나오는 타yo부터 챙긴다.

늦겠어 일어나

나도 이제는 부시시한 머리를 한손으로 넘김며 밤새 굳은 몸을 일으킨다. 더 꾸물거리다간 온가족이 세트로 늦게 된다. 한해 한해가 다르다고 했던가. 종일 앉아 일하는 내 몸도 이제 슬슬 굳어가기 시작한다. 먹고 살기 바쁘다 아니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관절에 기름칠 하지 않고 삼십년을 좀 넘게 막 굴려온 몸뚱아리는 최근 반항을 시작했다. 갑작스런 몸뚱아리의 반항은 사춘기의 그것보다 격렬한 구석이 있다.

세수를 한다. 면도를 한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물도 한잔 마시고, 지운이 옷도 갈아 입힌다. 요즘 녀석은 안 돼라는 말을 배워서 옷을 갈아입힐 때마다 안 돼~ 하며 짜증을 부린다. 달래기도 하고 혼내키기도 하면서 간신히 갈아입히고 나면 나갈 시간이 된다. 지운엄마는 어느새 준비를 다 마치고는 지운이 입에 밥을 떠넣어 주고 있다.



8시까지 케익 두조각이 남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차키를 손에 든 지운이를 안고, 가방을 메고 지운엄마를 뒤에 딸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온다.

츄악

지운이가 리모컨으로 된 차키를 눌러 차문을 연다.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짧고 경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불길하다. 악명 높은 현기차가 드디어 나에게도 클라스를 보여주는 것일까? 머리 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와장창 돈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편으로는 출근도 걱정이다.

지운이에게 차키를 받아 다시 한번 눌러본다.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차키로 직접 문을 열고 시동을 걸어본다.
시동은 안 걸리고 잠깐 낑낑대려다 만다. 아 빳떼리가 나갔구나. 왜 나간 거지? 어젯밤까지도 분명히 잘 타고 들어왔는데... 하며 되지 않는 원인 분석을 해본다. 그러다 라이트 켜는 부분을 보니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젯밤 밖에서 지인과 술을 마신 후 대리기사를 불러 집에 도착한 후, auto 로 맞춰져 있는 헤드라이트를 끄려는 기사님에게 냅두셔도 된다 했는데, auto 가 아니라 켜져 있는 상태로 둔 것이다. 밤새 헤드라이트는 불빛을 내뿜으며 SOS 신호를 보냈을 테지.

미련한 주인아. 헤드라이트 좀 끄고 가라.

지운엄마와 지운이를 올려 보낸다. 긴급출동이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꺼야. 일껏 밖으로 나와 기분이 업되었던 지운이는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쓴다. 3별화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며 내가 앞장 서 집으로 들어온다. 지운이도 군말없이 따라 들어온다.

방전된 자동차가 축 쳐진 채 사이드미러를 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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