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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이 참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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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이 참 환합니다




우리는 흘러갑니다.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간직된 것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허수아비 같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불타는 걸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그것을
열망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때, 그 순간이 과연 무엇의
시작이었는지 모호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의
후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과 시작은 시간의 관념을 하나의 직선 개념으로 보려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나의 사랑을 그 수직선의
편협한 실재 공간에서 풀어 놓고 싶습니다.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해 주시겠지요.

다른 건 바라지 않겠습니다.

늘 환하게 사십시오. 봄꽃은 소월의 시에서처럼 '저만치'
에서 황홀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봄꽃'과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나' 사이의 거리 따위는 그만
잊겠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이 수십 년 전의 당신인 것도
같고, 엊그제 꿈속에서 만난 당신인 것도 같고, 또는 전생의
당신인 것도 같습니다.

부드러운 안개가 흘러가지만 '천 년전부터' 거기 있었던 벚꽃
환한 그늘에 은신한 당신이 비로소 따뜻하고 넉넉하게 미소
짓고있는 모습을 보니, 이 봄날이 참 환합니다.


- 박범신의 에세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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