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꽃 정보
우정의 꽃본문
우정의 꽃
김 인 자
내게도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무런 격식 없이 만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하나쯤 갖고 있다면 마음만이라도 부자이지 않을까. 세상을 살면서 명예와 권세도 좋지만 이런 사람 하나 쯤 갖고 있는 것도 큰 복일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이른 아침 집 앞의 배봉산을 오르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와 동행한 내 친구가 인사를 시키는데 첫인상이 순수하고 순박해 보였다. 그 이후 우리는 셋이서 아침마다 앞산을 함께 오르며 다람쥐처럼 일부러 사람들이 밟지 않은 험한 길을 뛰고 걷기도 했다. 소나무가 많은 곳의 바위에 이르면 앉아서 쉬다가 야호! 를 길게 외치며 누구의 호흡이 제일 긴가 확인하며 웃기도 했다.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산을 함께 걸으며 있는 모습 그대로, 가식 없고 허영 없는 산처럼 꾸밈없는 그의 진실에 정이 들었다.
정서가 비슷한 우리는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오고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다. 다정하고 따듯한 시간들이 많아지고 난후, 그녀가 내게 친구인데 말을 놓자고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어느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내가, 나이도 비슷한 그를 친구로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것이 20여 년 전일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계절은 봄인데도 마음이 황량한 가을이 되어있을 때, 자신을 쏟아내며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어떤 벽을 만들지 않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우정의 탑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글의 독자이기도한 그녀는 내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않고 달려온다. 살아가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그녀는 가끔씩 좋은 말로 나를 철들게 한다. 지명(知命)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잘 타는 그녀 앞에 서면 나는 자연히 작아지고 만다. 늘상 자신을 낮추는 그의 말이나 행동에 자연히 겸허해지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사람됨은 그의 벗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친구를 사귈 때는 정서가 비슷한 사람을 사귀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다양한 친구들을 갖게 된다. 많은 친구를 사귀다 보면 더러는 마음 상하는 일도 있지만 그들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내 스스로 배우는 일도 많아진다.
지난해는 유난히도 많이 아팠다. 병원 문을 드나들며 몹시 지쳐있으면서도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그녀였다. 그녀는 놀러 오고 싶어도 혹여 글 쓰는 시간을 방해할까봐서 많이 자제한다는 말을 들어서 미안했는데, 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집을 방문했었다. 편안한 사람이기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도 찾아간 것이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있으려니까 나 혼자 쉬라고 하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짓고 있었다. 찬밥이 있으면 그냥 먹자고 해도 내가 놀러 간다고 했을 때 따끈한 밥을 지어 주려고 미리 쌀을 불려 놓았다는 것이다.
조촐하게 차려진 점심 밥상이 금방 내 앞에 놓여졌다. 입맛이 없었던 나는,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와 친구가 밥숟가락에 얹어주는 조기구이로 식욕이 돌아 밥 한 공기를 다 먹고는 내가 놀랐다. 밥알이 모래알 같아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친구의 정성으로 입맛을 돌게 한 것이다. 가끔은 누구에게 보호 받고 위로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때가있다. 조기 몇 마리를 구워 내 수저 위에 올려주는 그는 친구가 아니라 늘상 나를 위해주는 언니나, 마냥 응석부리고 싶은 어머니 같아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언제인가 놀러 갔을 때는 나를 주려고 감자떡을 만들고 있어 놀랐었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무엇을 만든다면 그 감동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일이다. 그것도 시골에서 얻어온 감자녹말로 귀한 감자떡을 만들고 있었으니 그 감동은 두 배로 우러났다.
우리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마음을 열어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만나는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거북한 사이가 될까봐서 사람 사귀는 일을 기피하는 k선생님도 보았다. 옛 어른들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부족한 사람의 만남을 두고 인생의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었다고 한다. 선인들의 지혜로운 행동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배우려는 자세만 있으면 누구라도 스승이란 말이 있듯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좋은 점은 있게 마련이어서 그걸 본받으려는 자세만 된다면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의 만남은 좋은 친구로 발전되지 않을까.
그동안 그녀와 나는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사이로 지내왔던 것 같다. 너무 가까우면 부딪쳐서 깨어지기 쉽고, 너무 멀면 마음이 멀어지게 마련인 것이 사람 사이다. 진정한 친구일수록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장점과 단점을 포용해야 하듯이,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 다가갔고, 서로의 신뢰감이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한다. 부부사이도 그렇겠지만 친구나 연인 사이도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얻는 일이 가장 좋은 사이가 될 것이다.
징검다리는 물을 건너려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도드라지지 않고 반은 묻혀있는 편안한 사람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놓여진 징검다리처럼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보폭의 사이로, 차간 거리를 두고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지금까지는 그렇게 지내왔다. 앞으로도 반은 묻히고 반은 얼굴 내민 징검다리의 디딤돌처럼 그렇게 편안한 우정의 꽃으로 가꾸고 싶다.
0
댓글 4개


마음에 와 닿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