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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왜 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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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1997년 12월 3일에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IMF_구제금융_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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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외환위기'.. 실제 위기의 순간은 이런 모습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mPiH3nE15c

 

외환위기 국가 부도의 날 !! IMF는 왜 왔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Raq-XSqxCxc

 

지금 제 컴퓨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놓친 곳이 많을 것 같고요. 제가 몰라서 틀린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곳은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Youtube 영상 속에 있는 내용입니다.

 

1985년 미국과 일본 등 다섯 곳의 경제선진국이 플라자합의를 합니다.
세계 1위의 경제대국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2위 일본
당시 일본의 엔화 가치는 낮았습니다.


자국의 화폐 가치가 낮으면 수출이 유리하죠?

 

가격경쟁력

 

1985년 환율 기준 1달러 당 240엔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재정과 무역 적자가였고
물가도가 고조 됨에 따라 금리인상기

G5,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가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환률에 관한 합의를 합니다.

........................................................


https://ko.wikipedia.org/wiki/플라자_합의

앞서 미국 긴축정책으로 말미암아 1980년부터 1985년 사이

미국 달러는 당시 가장 큰 경제규모를 갖춘 4개 국가 통화인

일본 엔,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 그리고 영국 파운드에 대해

약 50% 평가절상한 상태였다. 폴 볼커 하 연방 준비 제도는

금리를 인상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막았지만,

금리인상은 미국 달러의 가치를 높여서 세계 시장에서

미국산업계(특히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당시 미국은 대외 무역수지 불균형과 안으로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잃은

미국 노동자들이 일본 차량을 부수며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레이건 정부의 유명한 ‘쌍둥이 적자’이다.

 

미국 정부 처지에서 달러 평가절하 당위성은 두 가지였다.

국내총생산의 3.5%에 달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감소시키는 것과

1980년대 초반 시작된 미국 경제의 급작스러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는

금리 인하를 거부했다. 금융산업계는 몰리는 달러로 수익을

낼 수 있었고, 금리인하를 통한 달러 평가절하는 인플레이션을

줄이고자 하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계획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산업계는 이에 굴하지 않고 외국과 경쟁에 대항해서

자국 산업 보호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하였고,

제조업자, 서비스 제공업자 농부들이 가담했다.

첨단 기술 기업인 IBM과 모토로라는 물론 곡물 수출업체,

자동차 제조업체, 캐터필라 같은 엔지니어링 업체들도 가담했다.

 

1985년까지 캠페인은 의회가 무역보호법 통과를 고려할 정도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무역 규제에 대한 가시화는 백악관이

해외 주요국들과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플라자 합의에 도달하도록 이끌었다.

........................................................


일본의 유명 수출기업인 TOYOTA, MITSUBISHI, SONY
미국시장을 점유해 버린 일본 기업들
무역적자가 심각한 미국
일본에 엔화 가치 상승을 요구합니다.


엔화 상승과 달러화 하락으로 무역수익률을 높이려는 미국
미국 경기가 죽으면 일본도 악영향.
경제적 상생의 필요성을 느낀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합의.

일본은 엔고화로 인해 1달러 당 210엔 정도의 변동을 예측
하지만 1달러 당 120엔으로 엔화가치가 2배나 상승합니다.


1달러 당 살 수 있는 엔화가 떨어졌다는 것은
엔화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
1달러로 240엔 만큼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120엔 만큼 밖에 사지 못한다는 뜻.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큰 수혜를 입은 대한민국
당시 환율고정제였던 대한민국은
엔화 상승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원화가치 하락.


저임금 노동력과 높은 생산력의 대한민국
원화가치 하락으로 무역흑자가 나자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받아 기업은 생산설비를 늘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의 호황기

 

하지만, 자본금이 아닌 빚을 내서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됩니다.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
정부가 금융기관을 좌지우지


한보그룹사태 자본금 900억 > 대출액 5조

1995년 대한민국 일자리는 평생 직장이다. 가 깨집니다.

 

일본의 금리인하 정책.
금리가 낮아지자 서민층의 부동산 구매량이 폭등합니다.
저수출 영향으로 경제성장이 멈추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합니다.

 

1995년 역플라자 합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qkdwogur123&logNo=220820471684

 

달러화 가치 상승, 엔화 가치 하락 엔저로 인해

한국의 가격경쟁력이 하락합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고도의 기술력을 보유.


일본수출 흑자, 한국 수출 적자


은행도 문제가 있었다?


대출시 장기보다 단기가 저렴, 은행이 해외로부터 단기 자금 대출
국내 기업에는 장기로 대출,

장기대출로 발생하는 이자로 인한 수익이 목적.


기업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은행도 해외대출 자금을 갚지 못하게 됩니다.

 

1997년 IMF

 

중소기업 물품을 어음으로 사려는 대기업, 종금사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받는 중소기업

 

대기업의 부채 > 대기업의 어음 >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미도파 사태
https://ko.wikipedia.org/wiki/롯데미도파
2002년 롯데로 넘어가 2003년 롯데 미도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해오다가 2013년 롯데쇼핑과 합병함.

 

대우그룹 사태
https://ko.wikipedia.org/wiki/대우그룹
대우는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9년 워크아웃을 맞아 해체되었다.

현재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포스코대우,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대기업 하나가 도산하면 중소기업과 은행까지 영향.

 

IMF 구제금융

 

구제금융으로 인한 여파

 

1. 구조조정
2. 외국기업이 한국기업을 헐값에 인수
3. 부실은행 파산

 

당시 실업자 수 100만 명
금리 30%까지 인상
금리 인상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
또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헐값에 인수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이 가능한 나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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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왜 왔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오늘, 지금 조금 알았습니다.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안 되겠습니다.

기업이 무너졌을 때 정부가 나서서 뒷수습합니다.

뒷수습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 같이 살아야 하니까 그랬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전 서계 어떤 나라도 자국의 기업을 죽이려는 정부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 대한민국에 생겼습니까?

가만 보니까요.

기업하시는 분들 위하여 지원금도 엄청 쓰는 것 같아서요.

안 아깝습니다. 기업이 죽으면 나라의 경제도 무너질테니까요.

 

기업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기업을 위하여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며

국민에게 득이 될 때 키워주고,

국민에게 해가 되는 경우

정부는 나서서 그 피해를 사전에 막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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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2019.06.13. 17:33:14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사하다 보니까요. 기업들이 이제는 사기를 못 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활동성이 떨어지는 모습인 것 같아서요.

못 움직이는 거죠. 그렇다고 풀어 주자니?

국민은 다치고 기업주는 살찌고? 체중 말고요. ㅡㅡ.

정부는 IMF 기억이 날 것 같아요.

내가 국가이고 정부인데 내가 이 모양이면 되겠어? 하면서요.

 

이런 쓰레기 같은 기업은 발목, 손목 모두 묶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자기들 돈으로 투자하면 누가 뭐라 합니까?

왜 모두 부채입니까? 재산들 많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땜방은 국민이 하고요.

부채들 모두 갚고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종수정 : 2019.06.17. 16: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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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IMF_구제금융_요청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1997년 12월 3일에 이루어졌다.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외환보유액이 급감했고 IMF에 20억 달러 긴급 융자를 요청하였다. 외환 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외환보유액이 한때 39억 달러까지 급감했지만,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다.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환란', 'IMF 관리체제', 'IMF 시대', 'IMF 사태' 등으로 불리나 IMF라는 명칭 자체가 외환 위기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나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는 상징성으로 인해 내용이 압축된 단어로 대한민국 언론 등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 위기' 속에 대한민국 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가 'IMF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은 1997년 11월 10일에 이루어진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통화 이전까지 외환위기의 심각성조차 모르고 있었다.

많은 회사들의 부도 및 경영 위기가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대량 해고와 경기 악화로 인해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1997년 12월 18일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여당은 야당에게 패배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고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해서 IMF의 개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대한민국은 IT 산업 장려 정책이나 대기업 간의 사업 교환 및 통폐합으로 경제 재건을 도모했다. 1999년 3월, 정부는 사이버 코리아 21 계획을 발표하며 IT 산업 발전 및 인프라 투자에 힘을 쏟았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8년 12월, IMF 긴급 보관 금융에 18억 달러를 상환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금융 위기로부터 서서히 빠져나갔다. 2000년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였고,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2001년 8월 23일, 대한민국에 대한 IMF 관리 체제가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기 발생 때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장치로서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려왔다. '외환 위기'로 39억 달러까지 떨어졌던 대한민국의 외환보유액은 이듬해인 1998년 말 52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1년 말에는 1028억 달러로 1000억 달러선을 돌파했다. 2001년 8월 23일에는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위키백과 말씀입니다.
IMF가 개판 만들어 놓은 나라가 있습니다.
르완다, 소말리아가 대표적입니다.
르완다는 종족 분쟁으로 불똥이 튀어 잘 아시다시피 대량 학살이 있었습니다.
소말리아는 지금 나라라고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IMF를 받아 들이는 바람에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주 다행인 경우입니다.
모처럼 뵙습니다. 선생님.
네. 두 나라 모두 내부 분열로 그렇게 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역시 경제문제였군요.
지금 이렇게라도 지내는 것만 해도 저는 좋거든요. ㅠㅠ
물론 더 나은 세상이 오면 좋겠으나 당분간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중국도 우리와 같은 IMF 상황을 직면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기업과 손잡고 일하는 한국기업이 있다면
그냥 지나갈 것 같지는 않아서요.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IMF가 온 이유

고정 환율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고정_환율제

IMF의 원인, 파헤쳐보자.
https://brunch.co.kr/@zangt1227/63

1. 김영삼 정부의 무지,
  당시 OECD에 가입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네요?
2. 한국은행은 보유외환을 즉시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지 않고 시중은행에 예치하였고
  시중은행 역시 자산으로 운용하지 않아
  한국은행이 보유외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답니다.
  신용공급이 중단되자 갑작스러운 외환부족에 대처할 수 없었고요.,
  정부는 한국은행, 시중은행들을 관리, 감독했어야 했으나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기업들이 무식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러네요.
 
한보그룹 부도
삼미그룹 부도
진로그룹 부도
삼립식품 부도
미도파 모 기업 대농그룹 부도
한신공영 부도
기아그룹 부도
쌍방울 화의 신청
해태제과 부도
뉴코아 부도
온누리여행사 부도
고려증권 부도
한라그룹 부도
동서증권 부도
청구그룹 부도

이쯤에서 중소기업은 피바람 하루 100개 도산

나산그룹 부도
극동건설 부도
삼양식품 화의 신청
파스퇴르 화의 신청
단국대학교 부도
대농그룹 계열사 모두 부도
거평그룹 해체
대우자동차 부도
쌍용그룹 해체
동아그룹 해체
고합그룹 해체
동양그룹 해체
신호그룹 해체
새한그룹 해체

해체가 부도죠?
더 있더라고요.
그런데 더 정리하기가 그래서요.

IMF 20년… 몰락은 한순간, 사라진 너의 이름은 -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5/2017111501844.html

1997 국가부도의 날과 함께 부도난 기업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201640&memberNo=34976611

대우그룹이 파산할 때 남긴 부채는 자그마치 40조가
넘는 금액으로 1997년과 98년에 이루어진 분식회계의
결과였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파산 금액에
해당되는 큰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로 알아본 IMF 당시 처참히 무너진 한국 기업 6곳
https://www.insight.co.kr/news/197667

'국가부도의 날' 이후 그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됐나? 완벽정리
https://1boon.kakao.com/interbiz/5c04ba6a709b5300010cac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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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괜찮나? 검색해 보고는 깜놀했습니다.

금융연구원 "대기업집단 47곳 중 40%가 부채비율 200% 넘어"
http://www.businesspost.co.kr/BP?command=naver&num=52863
2017-07-02 17:08:15

지난해 4월1일 기준 국내 47개 민간 대기업집단 가운데
연결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기업집단은
19곳으로 전체의 40.4%를 차지했다.

연결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 기업집단도
13곳(27.7%)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그룹은 연결 부채비율이 1091.4%로
47곳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높았다.

삼성도 마찬가지고요.

아니 무슨 기업들이 부채비율이 이렇게 높습니까?
그러면서 자신들은 돈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기업은 돈은 없고, 기업주는 돈이 많고!
이상해도 이렇게 이상한 기업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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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에도 우리나라 경제를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여
이런 것 같습니다.

IMF의 원인, 파헤쳐보자.
https://brunch.co.kr/@zangt1227/63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IMF_구제금융_요청

원인

1. 지급준비정책의 변화
2. 외환 보유고 관리의 실패
3.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대출
4. 환율 운용 정책 실패
5. 금융기관의 부실
6. 대외 금융세력의 공격

IMF 경제위기 극복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IMF를 극복하는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 자율화 정책, 대기업을 각 기업으로 독립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 IT 육성정책, 신용카드 정책,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IMF 2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경제지표상으로 실업율을 제외하고
성장·물가·경상수지 등에서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주가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졌고 금리는 낮아졌으며
환율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 앉았다.

해고 규제 완화

IMF의 원조 조건에 따라

고용시장에 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었고
평생고용제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대신 평생직업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급여에서도 호봉 개념 연공서열 대신 연봉제로 바뀌었고,
또한 정리해고가 자유로워져 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국민 의식 변화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는 아주 어려웠지만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일치·단결하는 모습이
나타났으며 과거의 무사안일주의가 타파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위키백과 말씀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놓쳤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_IMF_구제금융_요청

상세한 정보는 링크 속에 있습니다.
IMF 10년…한국 경제는 왜 역동성을 잃었을까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6&aid=0000024669

이것을 왜 자꾸 보라고 하지?
나는 이런 쪽에 지식은 모르고 싶은데. ㅡㅡ.

[KBS 공감토론] IMF 구제금융 20년 대한민국의 과제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574265

이것도 봐야 하네?
반갑습니다.
새로운 글이 있는지 방문은 자주합니다.
IMF에 관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은 IMF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을 전에 들었습니다.
사회 전분야에 있어 그 전후를 IMF가 비상하게 갈라버렸다는 통찰에 공감했습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성이 일하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주부요. 분명 보통은 집에서 살림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죠.
이 시기가 IMF 이후일 것 같아서 검색해 보았으나 찾지는 못했습니다.
카이루 님께 댓글 드리고 또 찾았으나 안 보입니다. ^^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머리가 변할 일은 없을 것 같고요.
우리가 변하여 그들이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빠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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