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두 늙어가나봐요... 정보
이제 나두 늙어가나봐요...본문
자꾸 옛날 생각이 나구....
옛날생각화면 눈물도 나구...
그누의 옛날 링크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04-11-11 11:33 에 제가 옮겨적었군요..
------------------
안녕하세요.저는 이동통신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어요.
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수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정성을 다하겠습니다.**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비밀번호를 좀 가르쳐 주세요
이혜영: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좀 불러주실래요
고객:000-1234-5678이요.
이혜영: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난 데요.빨리 불러주세요
이혜영: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본인 아니시죠?
고객:제동생이예요.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죄송한데 고객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후에만
가능합니다.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서 전화주세요
고객:제 동생 죽었어요.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 동의서를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
고객:뭐가 그렇게 불편해요.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에의 부모님을 바꿔달라고 했죠
고객: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여보세요.
이혜영:안녕하세요**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제 아들이요?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부터 미안해 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비밀번호 왜 알려구 그러니?...
꼬마:(화난 목소리로)엄마가 자꾸 혁이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어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혜영: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을 하셔야 합니다.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예 알겠습니다.
이혜영:죄송합니다. 확인후 전화주십시요.
아빠: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아픔에 어쩔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춥니? 혁아 ..아빠 안보고 싶어??"
가슴이 메어지는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낸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임에도 불구하고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그 아빠는 그 아들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였어요.
그 날 따라 불만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 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수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여자였어요.
이혜영:정성을 다하겠습니다.**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비밀번호를 좀 가르쳐 주세요
이혜영: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좀 불러주실래요
고객:000-1234-5678이요.
이혜영: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난 데요.빨리 불러주세요
이혜영:가입자가 남자 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본인 아니시죠?
고객:제동생이예요.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죄송한데 고객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후에만
가능합니다.저희 밤 열시까지 근무하니 다서 전화주세요
고객:제 동생 죽었어요.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사망진단서와 전화주신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 동의서를 팩스로 좀 넣어 주십시요
고객:뭐가 그렇게 불편해요.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네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에의 부모님을 바꿔달라고 했죠
고객: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여보세요.
이혜영:안녕하세요**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제 아들이요? 6개월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부터 미안해 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비밀번호 왜 알려구 그러니?...
꼬마:(화난 목소리로)엄마가 자꾸 혁이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어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지운단 말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혜영: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변경을 하셔야 합니다.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예 알겠습니다.
이혜영:죄송합니다. 확인후 전화주십시요.
아빠: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아픔에 어쩔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번호를 눌러봤죠,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마시는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춥니? 혁아 ..아빠 안보고 싶어??"
가슴이 메어지는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낸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임에도 불구하고 녹음되어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거구요. 그 아빠는 그 아들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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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개

저는 아이들 있는곳을 피해 다녔죠 자꾸생각이 나니..........
2년동안 아무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누란곳이 어떻게 보면 저를 살린듯 합니다.
그 아품을 아는 사람 직접 그런일이 생기지 않고 그 마음을 모릅니다.
2년동안 아무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누란곳이 어떻게 보면 저를 살린듯 합니다.
그 아품을 아는 사람 직접 그런일이 생기지 않고 그 마음을 모릅니다.
음....
ㅎ....지난일이 자꾸생각나는것은....나이먹는 증거지요.....
요새 4-5십대 명퇴자가 많다던데....
앞으로두 살아온날만큼 살아가야 하는데....(저는 쬐금부족 ㅎㅎ)
새마음으로.... 다시태어나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는데.....잘안되네요.....
요새 4-5십대 명퇴자가 많다던데....
앞으로두 살아온날만큼 살아가야 하는데....(저는 쬐금부족 ㅎㅎ)
새마음으로.... 다시태어나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는데.....잘안되네요.....
어떻게 보면 서민들에게는 평균수명 연장이 사람잡는 것 같기도 하구요...
나머지생애가 더 의미있는 좋은 방법있나요?
나머지생애가 더 의미있는 좋은 방법있나요?
헌이님에게두 답글을 쓸까했지만.....(이유는???아래)
인생 4-50살아보면 어느정도 세상돌아가는것을 알게되지요...
(요새는 원체 세뇌되서 모르는이들도 많지만)
(그동안 외부의 힘에 이리밀리구 저리밀리구 살아온것을 느낍니다)
(내가좋아하는일을 하구 살아온게아니라 남의 생각에 흔들리는 삶을 살아온것)
결국 나의 의지로 살아온게 아니라는거죠....(나만 그런지도)
더구나 큰시련(사고)을 격게되면 세상보는눈이 조금 달라지는데...
거기서 큰 갈림길이 나온다구 생각되구요....
나만생각하는 생각.....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는..생각으로.....(두가지길)
사실 우리란 나의 연장이죠....
나란 우리부모님..그리구 나....나의 자식들.....나아가 친구와 이웃들.....
요새참 어렵습니다.....나와 이웃과 국가, 지구가....(쩝....)
내일 지구가 멸망하드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뒤늦게나마 나의 길을(나의 일을) 하며 살고싶은거죠...
그건사람마다 다를테니......각자 가만히 명상을 해보시길.....ㅎㅎ
인생 4-50살아보면 어느정도 세상돌아가는것을 알게되지요...
(요새는 원체 세뇌되서 모르는이들도 많지만)
(그동안 외부의 힘에 이리밀리구 저리밀리구 살아온것을 느낍니다)
(내가좋아하는일을 하구 살아온게아니라 남의 생각에 흔들리는 삶을 살아온것)
결국 나의 의지로 살아온게 아니라는거죠....(나만 그런지도)
더구나 큰시련(사고)을 격게되면 세상보는눈이 조금 달라지는데...
거기서 큰 갈림길이 나온다구 생각되구요....
나만생각하는 생각.....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는..생각으로.....(두가지길)
사실 우리란 나의 연장이죠....
나란 우리부모님..그리구 나....나의 자식들.....나아가 친구와 이웃들.....
요새참 어렵습니다.....나와 이웃과 국가, 지구가....(쩝....)
내일 지구가 멸망하드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뒤늦게나마 나의 길을(나의 일을) 하며 살고싶은거죠...
그건사람마다 다를테니......각자 가만히 명상을 해보시길.....ㅎㅎ

저는 어제 꿈에 제가 오랫동안 사랑했던 첫사랑이 나와서 갑자기 너무 안부가 궁금해서 끙끙 앓다가 홈페이지에 살짝 들어가봤는데 후회만 되더라구요.
평소같으면 꿈에 나와도 그냥 생각만하고 그렇게 찾아보진 않았을텐데.. 영영 못볼것같은 꿈을 꿔서 그만 못참고 들어가봤네요ㅠㅠ
제가 혼자 오랫동안 좋아하다 2년 전에 사귀게 됐었는데 오랜 짝사랑은 잘 이루어지기 힘든가봐요..
글 읽으니까 눈무리.. 흑
눈물닦으러 화장실좀 다녀와야겠어요!!
평소같으면 꿈에 나와도 그냥 생각만하고 그렇게 찾아보진 않았을텐데.. 영영 못볼것같은 꿈을 꿔서 그만 못참고 들어가봤네요ㅠㅠ
제가 혼자 오랫동안 좋아하다 2년 전에 사귀게 됐었는데 오랜 짝사랑은 잘 이루어지기 힘든가봐요..
글 읽으니까 눈무리.. 흑
눈물닦으러 화장실좀 다녀와야겠어요!!
짝사랑....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은데,
가슴아프게 하고, 인생을 허비하게 하더군요....
사람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더해가는 것 같아요.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은데,
가슴아프게 하고, 인생을 허비하게 하더군요....
사람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더해가는 것 같아요.

네,, 10년이란 시간동안 좋아했던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겠죠. 제가 살아온 인생의 1/3도 더 되는 시간인데..
그것도 완전히 가져보지 못한것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때문에 더 한것같아요.
어차피 이루어질수 없는거 잘 알면서도.. 쉽게 잊어지지가 않네요.
기적처럼 잠시나마 사귀었던 순간처럼 그렇게 어느날 또 연락이 올것만같아 계속 미련을 부리고있는지도 모르겠어요ㅠㅠ
그것도 완전히 가져보지 못한것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때문에 더 한것같아요.
어차피 이루어질수 없는거 잘 알면서도.. 쉽게 잊어지지가 않네요.
기적처럼 잠시나마 사귀었던 순간처럼 그렇게 어느날 또 연락이 올것만같아 계속 미련을 부리고있는지도 모르겠어요ㅠㅠ
20대를 마감하면서 이런 일들을 죽 돌아본 기억이 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다.... 이 하나는 남더군요....
나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다.... 이 하나는 남더군요....
ㅎ....아직 좋을때 입니다.....일어설수만 있으면....
넘어지구 깨지구해도...나중에 아련한....추억꺼리죠....
그런추억조차 없다면 나이먹어서 후회된답니다...
뜨거운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사세요......
무덤덤하게 된다는건......늙어간다는거죠....
넘어지구 깨지구해도...나중에 아련한....추억꺼리죠....
그런추억조차 없다면 나이먹어서 후회된답니다...
뜨거운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사세요......
무덤덤하게 된다는건......늙어간다는거죠....
이런 사랑도 있어요.
이것도 역시 어느 홈피에 있었던 글을 2004년도에 스크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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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옥 (인일여고 12회졸업)
인일여고 2학년 때이니
31년전의 아련한 일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길
어머니는 새벽기도 가기전
나를 학교에 바래다 주고 교회로 가시곤 했다.
그 날 학교 교문에 거의 다달았을 무렵
나는 한 남학생이 전봇대 밑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심코 교문을 들어왔지만
하루 종일 그 소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의 끝은 혹시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을까로 진전이 되었다.
그 이튿날은 내가 먼저 그 곳을 유심히 보았다.
키가 큰 그 학생은 그 날도 여전히 그 곳에 서 있었다.
삼일째 되는 날엔
어머니와 같이 가지 않고
나혼자 등교하였다.
조금 더 멀리서도
그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심장이 뛰는지
쿵쿵! 소리가 새벽길을 울리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은 빨랐지만
그 곳에 가까이 갈수록
나의 발걸음은 천천히 가게 되었다.
그가 그 곳에 서 있는 이유를
나에게 말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무심한듯 그 곳을 지날 때.
"저 저좀 보세요."
그 학생이 드디어 말을 건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 보았다.
"저 여기서 여러날 기다렸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시네요.
눈길 한 번 받는 데 보름이 다 되어가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지 말고
가끔은 눈길을 받고 싶어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이 있나 둘러도 보세요.
시낭송하는 것을 듣고 부터
만나고 싶어서
이름도, 집전화번호도 알아보았어요.
많이 당혹스럽겠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난 요즈음 공부를 전혀 할 수 없어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그는
불량해 보이지 않고
진실되어 보였다.
어쩌면 그가 제고 교복을 입고 있어서
나에게 믿음을 더 주었는지 모른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하나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이 학생이 3학년이라는 것과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그럼 내일 다시 한 번 만나서 말씀드릴께요.
" 하고는 황급히 교문으로 들어섰다.
큰 바위 덩어리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안절부절 고민을 했다.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그 학생도 나도 학업에 열중하려면
내일 그 학생을 만나
"대학에 붙으면 만나준다."고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 학생에게 선생님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그는 너무나 기뻐하며 단숨에 학교 앞 언덕 길을 내려갔다.
그 학생은 더이상 그 곳에 서있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지던 날.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에 붙었으니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예비 3학년이었고
입시 준비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약속을 해놓았으니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를 만나서 대학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약속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엔 "내가 대학에 합격해야 만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선뜻 공감했다.
그는 봄부터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학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니
저절로 나를 잊을 수 있을 것이고
혹시 1년을 더 기다리고 있다면
그 때는 그를 만나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3학년이 되었다.
그 때 우리 학교는
무감독 시험과
복도 끝에 학용품 무인 판매를 실시했다.
인일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자랑스런 제도였다.
아침 6시 40분에 수업시작
밤 9시 30분에 수업이 끝났다.
통금이 있었던 그 때에도
우리들은 밤 11시가 넘도록 도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월요일 마다 전과목 시험이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강훈련의 입시 공부 속에서
지치고 지쳐가던 6월의 어느날.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2월말 부터 급성 장암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니 지금 병원엘 가자는 것이었다.
고운 얼굴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면서 부탁하셨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임순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의 조퇴 허락을 받고
그 학생의 어머니를 따라 기차를 탔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수많은 호스들이 얽히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무어라고 얘기하더니
간호사가 오고
의사가 오고
무언가 급한 의논이 있는 듯 하였다.
그러더니 얽히어 있던 호스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병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때?
이젠 하나도 안무섭지?"
네가 나를 보고 겁먹을까봐
간호원 누나에게 호스를 다 빼달라고 했어."
"나 조금도 겁나지 않았어요."
나 때문에 호스를 빼서 이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사실은 더 겁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했니?
나하고 약속한 것 지킬 수 있겠어?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나 너에게 한 가지만 물어볼께.
나하고 약속한 것 너의 진심이었니?
혹시 그 때 나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니?
그의 진지한 물음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도 나 보고 싶으면서도
공부하느라 꾹꾹 참았겠네."
이 물음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아.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애.
단 한 가지
너에게 약속한 것 내가 못지키게 된 것 미안할 뿐이야.
이건 불가항력적이었으니 용서해라.
대학에 꼭 합격해라.
너와 약속한 날짜는 안되었지만
죽기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었어.
" 내가 대학에 붙으면 만나 주겠다고 약속한
그 첫날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보내는
그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며칠 후
그의 어머니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동생이 오빠가 죽음을 행복하게 맞이했다고 전화해 주었다.
그 학생은 그 날부터
내 인생의 그 곳에 서 있다.
영원히 늙지않는 제고 3학년의 모습으로
내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너의 눈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나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라."고
나의 분주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는 우리 인생의 길이 언제나 달려야만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것이
곧 전진하는 것임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날 그 병실에서
얼떨결에 한 나의 대답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그와의 약속은 지켜진 것으로 믿고 싶다.
그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은 진지하게 했고
대답은 항상 진실이여야 했다.
그 학생과의 짧은 만남은
그 학생과의 긴 이별은
나에게 성공하는 삶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게 했고
그것은 내가 신학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것도 역시 어느 홈피에 있었던 글을 2004년도에 스크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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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옥 (인일여고 12회졸업)
인일여고 2학년 때이니
31년전의 아련한 일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길
어머니는 새벽기도 가기전
나를 학교에 바래다 주고 교회로 가시곤 했다.
그 날 학교 교문에 거의 다달았을 무렵
나는 한 남학생이 전봇대 밑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심코 교문을 들어왔지만
하루 종일 그 소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의 끝은 혹시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을까로 진전이 되었다.
그 이튿날은 내가 먼저 그 곳을 유심히 보았다.
키가 큰 그 학생은 그 날도 여전히 그 곳에 서 있었다.
삼일째 되는 날엔
어머니와 같이 가지 않고
나혼자 등교하였다.
조금 더 멀리서도
그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심장이 뛰는지
쿵쿵! 소리가 새벽길을 울리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은 빨랐지만
그 곳에 가까이 갈수록
나의 발걸음은 천천히 가게 되었다.
그가 그 곳에 서 있는 이유를
나에게 말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무심한듯 그 곳을 지날 때.
"저 저좀 보세요."
그 학생이 드디어 말을 건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 보았다.
"저 여기서 여러날 기다렸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시네요.
눈길 한 번 받는 데 보름이 다 되어가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지 말고
가끔은 눈길을 받고 싶어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이 있나 둘러도 보세요.
시낭송하는 것을 듣고 부터
만나고 싶어서
이름도, 집전화번호도 알아보았어요.
많이 당혹스럽겠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난 요즈음 공부를 전혀 할 수 없어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그는
불량해 보이지 않고
진실되어 보였다.
어쩌면 그가 제고 교복을 입고 있어서
나에게 믿음을 더 주었는지 모른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하나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이 학생이 3학년이라는 것과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그럼 내일 다시 한 번 만나서 말씀드릴께요.
" 하고는 황급히 교문으로 들어섰다.
큰 바위 덩어리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안절부절 고민을 했다.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그 학생도 나도 학업에 열중하려면
내일 그 학생을 만나
"대학에 붙으면 만나준다."고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 학생에게 선생님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그는 너무나 기뻐하며 단숨에 학교 앞 언덕 길을 내려갔다.
그 학생은 더이상 그 곳에 서있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지던 날.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에 붙었으니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예비 3학년이었고
입시 준비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약속을 해놓았으니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를 만나서 대학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약속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엔 "내가 대학에 합격해야 만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선뜻 공감했다.
그는 봄부터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학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니
저절로 나를 잊을 수 있을 것이고
혹시 1년을 더 기다리고 있다면
그 때는 그를 만나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3학년이 되었다.
그 때 우리 학교는
무감독 시험과
복도 끝에 학용품 무인 판매를 실시했다.
인일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자랑스런 제도였다.
아침 6시 40분에 수업시작
밤 9시 30분에 수업이 끝났다.
통금이 있었던 그 때에도
우리들은 밤 11시가 넘도록 도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월요일 마다 전과목 시험이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강훈련의 입시 공부 속에서
지치고 지쳐가던 6월의 어느날.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2월말 부터 급성 장암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니 지금 병원엘 가자는 것이었다.
고운 얼굴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면서 부탁하셨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임순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의 조퇴 허락을 받고
그 학생의 어머니를 따라 기차를 탔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수많은 호스들이 얽히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무어라고 얘기하더니
간호사가 오고
의사가 오고
무언가 급한 의논이 있는 듯 하였다.
그러더니 얽히어 있던 호스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병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때?
이젠 하나도 안무섭지?"
네가 나를 보고 겁먹을까봐
간호원 누나에게 호스를 다 빼달라고 했어."
"나 조금도 겁나지 않았어요."
나 때문에 호스를 빼서 이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사실은 더 겁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했니?
나하고 약속한 것 지킬 수 있겠어?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나 너에게 한 가지만 물어볼께.
나하고 약속한 것 너의 진심이었니?
혹시 그 때 나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니?
그의 진지한 물음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도 나 보고 싶으면서도
공부하느라 꾹꾹 참았겠네."
이 물음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아.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애.
단 한 가지
너에게 약속한 것 내가 못지키게 된 것 미안할 뿐이야.
이건 불가항력적이었으니 용서해라.
대학에 꼭 합격해라.
너와 약속한 날짜는 안되었지만
죽기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었어.
" 내가 대학에 붙으면 만나 주겠다고 약속한
그 첫날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보내는
그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며칠 후
그의 어머니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동생이 오빠가 죽음을 행복하게 맞이했다고 전화해 주었다.
그 학생은 그 날부터
내 인생의 그 곳에 서 있다.
영원히 늙지않는 제고 3학년의 모습으로
내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너의 눈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나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라."고
나의 분주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는 우리 인생의 길이 언제나 달려야만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것이
곧 전진하는 것임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날 그 병실에서
얼떨결에 한 나의 대답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그와의 약속은 지켜진 것으로 믿고 싶다.
그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은 진지하게 했고
대답은 항상 진실이여야 했다.
그 학생과의 짧은 만남은
그 학생과의 긴 이별은
나에게 성공하는 삶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게 했고
그것은 내가 신학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인일여고, 제물포고등학교인듯하네요.
저도 인천인인지라..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이야기네요....
안그래도 모닝님 글 읽고 퇴근하는길에 글이 다시 생각나면서 버스에서 끝내 울었는데.. 이글도 너무 슬프네요..ㅠ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지금은 옆에 있지 않아도 이 하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만 있어도 행복할것같아요
저도 인천인인지라..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이야기네요....
안그래도 모닝님 글 읽고 퇴근하는길에 글이 다시 생각나면서 버스에서 끝내 울었는데.. 이글도 너무 슬프네요..ㅠ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지금은 옆에 있지 않아도 이 하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만 있어도 행복할것같아요
인천이세요?
반갑습니다.
우리 시간내서 한번 봅시다.
반갑습니다.
우리 시간내서 한번 봅시다.
ㅠㅠ 정말 가슴이 미어지네요...너무 슬픈 글이네요.ㅠㅠ

저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감성적으로 변하는것 같네요..
어릴땐 슬픈거 봐도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나이드니까 웬지 짠하고 눈물도 막 그렁그렁하고 ;;
철이드는 증거인가 봅니다.
어릴땐 슬픈거 봐도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나이드니까 웬지 짠하고 눈물도 막 그렁그렁하고 ;;
철이드는 증거인가 봅니다.

눈물이 핑 도네요... ㅠㅠ 저도 늙었나봅니다.

가슴이 먹먹하네요.. 혁이 어머니도 잘 극복해서 지금쯤 잘 살고 있으리라 바래봅니다~
sir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고 좋은 일들만 생기시길 바랍니다~
sir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고 좋은 일들만 생기시길 바랍니다~
이글이 8년전의 글이고,
내용중에 이혜영이라는 분이 2년전의 일이라고 했으니,
결국 10년전의 일입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금이나, 10년전이나, 100년전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내용중에 이혜영이라는 분이 2년전의 일이라고 했으니,
결국 10년전의 일입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금이나, 10년전이나, 100년전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