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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승자 인류, 그래서 더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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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승자 인류, 그래서 더 행복해졌을까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 덕에생산과 지식 총량은 급팽창했으나행복은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호모 사피엔스 종말과 그 이후는?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김영사·2만2000원

 

농업혁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오늘날까지 인류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90% 이상을 제공하는 밀·쌀·옥수수·감자·보리·수수 등을 작물화함으로써 수백만년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이 처음으로 정주할 수 있게 해준 약 1만년 전의 농업혁명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렇지 못했단다. 옥스포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로 학위를 받고 히브리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유발 하라리(39) 교수는 거대사(빅 히스토리)의 한 갈래인 <사피엔스>에서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은 분명 크게 확대됐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진 않았단다.

 

“오히려 (식량 총량 증산에 따른)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그래선지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말까지 박아놓았다.

 

그러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후손인 농부, 양치기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다수 노동자, 사무원들보다 더 안락하고 보람있게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50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지은이는 현대산업문명에 치여 더 오지로 들어간 지금의 칼라하리 사막 수렵채집인보다 더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누렸을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으로 본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의 추가보다는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인지과학을 넘나드는 박식과 참신하고 발랄한 비유, 삶과 역사의 의미에 대한 진중한 문제제기가 빛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이런 얘기도 보탠다.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 농부와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집에 가져가는 식량은 500년 전보다 더 적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후 지구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인류는 이처럼 진화론적 승자가 됐을지 모르나 구성원 개개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류 전체 고통의 총량도 오히려 늘지 않았을까. 지은이는 과학혁명과 밀접하게 엮여 있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에게 저지른 착취와 학살, 노예무역 등의 끔찍한 만행들도 다시 떠올린다.

 

이 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류 진화의 진실과 그 의미를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개별 생물체들이 처한 삶의 조건 또는 ‘행복’ 여부와 연관지어 살피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손에 끊임없이 개량되고 개체수를 불려 진화론적으론 승자가 됐지만 태어나서부터 도살당할 때까지의 짧은 삶을 폐쇄공간에 갇혀 지내는 소나 닭의 지옥같은 삶에도 그는 관심을 기울인다. 오늘날 지구상 경작물의 대종을 이루면서 역시 진화론적 승자가 된 밀이나 쌀 등에 대해서는 인간이 그들을 길들인 게 아니라 그들이 인간을 길들인 것이라 본다. 그들의 번성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밤낮없이 노동하지만 소수 엘리트계급에 그 노고의 대가를 거의 몰수당한 채 허덕이는 인간들.

 

농업혁명과 함께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출현시킨 인지혁명, 500년 전에 시작된 과학혁명, “이 세 가지 혁명이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600쪽이 넘는 이 책의 주재다.

지은이는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유대인인 지은이가 그렇다고 절대적 존재(신)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유신론자인 것 같지는 않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에 정의는 없다”는 그의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처럼 비판적 시각으로 인류사의 특징적 국면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지만, 그렇다고 지은이가 비관론자거나 염세론자인 것은 아니다. 그는 ‘중도’를 얘기한다. 이들 세 가지 혁명을 거치면서 이룩해낸 인간의 성과를 인정하며, 삶의 의미를 나름대로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그에겐 ‘행복’(또는 절대 평정)이 그 판단의 기준인 듯하다. 그가 종교, 특히 불교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불교적 사유에서 궁극적인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교의 ‘고집멸도’ 또는 해탈에 그는 주목한다.

 

지은이가 전망하는 인류의 미래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다. 인간은 지금 빠른 속도로 진행중인 생명(유전자)공학,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디지털 인공지능 등)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진화다. 영생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지적 설계’에 따라 계획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인데, 지은이는 이를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이는 전지전능의 외부 절대신을 상정한 유신론의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과는 다르다. 그 결과가 어찌되든 그것이 현생 사피엔스의 종언으로 귀결될 것만은 분명하다. 머지않아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게 될 그날을 앞두고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것이 돼야 한다고 지은이는 얘기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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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은 일을 안한다 합니다. 할 이유가 없죠.
정글에 바다에 먹을거리가 넘쳐나니 배고프면 조금 수고하면 되므로...
대신 평균수명이 40 조금 넘는다는군요.
일장일단이 있는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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