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왜건이면 산다"…오래된 바람, 이번엔 다를까?
현대자동차(Hyundai Motor)의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가 출시 40주년을 맞아 더 뉴 그랜저(The New Grandeur)라는 이름으로 5월 14일 공식 출시됐다. 그런데 정작 온라인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부른 것은 세단이 아니었다. 디지털 자동차 아티스트 켈소닉(Kelsonik)이 그랜저를 왜건으로 그려낸 렌더링 한 장이 해외 자동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며 수많은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에서 왜건은 늘 실패했다
이 반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차와 왜건의 기묘한 역사를 먼저 짚어야 한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왜건의 무덤'으로 불렸다. 세단 선호가 워낙 강한 탓에 왜건은 나올 때마다 조용히 사라지는 신세를 반복해 왔다.
현대차의 왜건 역사는 1977년 포니(Pony) 왜건에서 출발한다. 앰뷸런스·상용차 겸용으로 만든 실용 모델이었다. 1980년대 초에는 스텔라(Stella) 왜건이 등장했지만 경찰차 전용으로 납품되는 데 그쳤고, 민간 시장에는 사실상 발을 들이지 못했다. 1995년에는 당시 잘 팔리던 아반떼를 기반으로 아반떼 투어링(Avante Touring)을 내놓았다. 주력인 1.5리터 모델이 경쟁 차종인 대우 누비라 스패건보다 30마력 이상 부족했고, 출력을 보완한 1.8리터는 자동차세 부담이 커 선택을 꺼리게 만들었다. 4년 동안 팔린 대수가 고작 1만7000대였다.
2008년에는 i30 CW를 내세워 다시 왜건 시장을 두드렸고, 나름 선전했다. 2011년 등장한 i40는 현대차가 처음부터 왜건으로 개발한 모델로, 유럽 전략형답게 디젤 파워트레인과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얹어 유럽에서는 마니아층을 만들었지만 국내에서는 역시 조용히 사라졌다. 2019년 단종과 함께 현대차의 국내 왜건 역사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켈소닉의 렌더링, 그랜저를 왜건으로 다시 상상하다
그런 맥락에서 국내 왜건 팬들에게 켈소닉의 렌더링은 단순한 디지털 낙서가 아니다. 더 뉴 그랜저의 디자인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 루프라인을 뒤쪽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린 이 이미지는, 한국 플래그십 세단이 왜건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샤크 노즈(Shark Nose) 전면부와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세단과 동일하고, 히든 타입 안테나 덕분에 길어진 측면 실루엣은 어디서도 끊기지 않는다. 트렁크 라인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완만한 경사의 리어 엔드가 들어서면서 적재 공간과 미적 완성도를 동시에 잡았다.
왜 자꾸 이 이야기가 나오나
그랜저 왜건에 대한 바람이 되풀이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SUV 일색의 시대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낮은 차고와 긴 루프라인이 가진 고급스러움을 찾는 소비자층이 조금씩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E클래스 왜건, 볼보(Volvo) V90, 아우디(Audi) A6 아반트(Avant)가 프리미엄 왜건 시장에서 탄탄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그랜저의 최신 디자인 언어가 왜건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켈소닉의 렌더링이 보여줬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현대차가 그랜저 왜건 출시를 검토한다는 공식 신호는 없다. 당분간 이 이야기는 열성 팬들의 바람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