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마니아

"지금 사면 2028년 출고"… 1,000만원대 경차가 포르쉐보다 오래 걸린다

· 2026-06-08 (월) 17:25:43 · 205
차 한 대 받는 데 꼬박 2년. 포르쉐(Porsche) 한정판이 아니라 1,000만 원대 경형 SUV 캐스퍼(CASPER) 얘기다.​

현대자동차(Hyundai)의 2026년형 캐스퍼 납기표는 보는 사람을 멈칫하게 한다. 터보 엔진을 얹은 액티브 트림 23개월, 자연흡기 1.0 모델 18개월, 스마트 트림 24개월. 밴은 여기에 6개월이 더 붙는다. 오늘 계약서에 서명해도 차 키는 2028년에 쥔다.

흔한 설명은 "유럽이 캐스퍼를 쓸어가서"다. 절반만 맞다. 캐스퍼 전기차는 해외에서 인스터(Inster)로 팔리는데, 2024년 10월 유럽 수출을 시작한 뒤 1년여 만에 5만 대를 넘겼고 일본에서도 상반기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다만 수출만으로는 23개월이라는 숫자가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 이유는 더 단순하다. 현대차가 위탁생산을 맡긴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애초에 많은 물량을 주지 않았다. 공장이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일감을 받지 못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올해 생산 계획은 6만 대 남짓. 업계가 보는 이 공장의 능력은 1교대만으로 연 7~8만 대, 2교대로 돌리면 10만 대다. 대기 줄에 유럽 주문까지 더하면 더 찍어도 소화할 시장은 충분하다. 그런데 계약 물량이 6만 대 선에 묶이니 라인은 여유를 두고 돌고, 그 여유만큼 소비자가 2년을 기다린다.​

왜 일감을 더 주지 않나. 첫 번째 매듭은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다. 이 회사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로 세워졌다. 업계보다 낮은 임금을 주고 지자체가 주거·보육을 사회적 임금으로 메워 주는 설계였다. 하지만 광주시가 약속한 주거 복지는 미뤄지거나 줄었고, 지난해 노조 결성과 파업을 거치며 무노조 전제도 무너졌다. 캐스퍼가 잘 팔리는데도 이 회사 지난해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20% 넘게 줄었다. 발목을 잡은 건 수요가 아니라 갈등이었다.

양측 셈법은 평행선이다. 현대차는 출범 당시 맺은 노사상생협정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고 본다. 실제로 파업 이후 물량 추가 논의는 멈춰 섰다. 노조는 노조를 정식 인정하고, 임금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올리고, 협정서를 완화하라고 맞선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2교대 전환은 파업의 쟁점도, 노조가 거부하는 사안도 아니다. 증산을 막아선 건 노조가 아니다.​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묻기는 어렵다. 다만 위탁생산 구조에서 라인을 더 돌릴지 결정하는 칼자루는 현대차가 쥐고 있다.​

이 그림은 광주 공장 담장 안에서만 그려지지 않는다. 두 번째 매듭이 현대차 본사 노조다. 광주형 일자리는 출범 당시 본사 노조가 "외주화"라며 거세게 반대했고, 노사는 '고용안정'과 '동일 차종 위탁 금지'를 조건으로 봉합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가 경차만 만드는 데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 ​

현대차 단체협약은 물량 이관과 생산 방식 변경에 노사 합의를 원칙으로 둔다. 최근 미국 현지생산 확대와 로봇 투입을 놓고 본사 노조가 "합의 없는 일방적 물량 이관은 용납 못 한다"고 맞선 것도 같은 틀이다. 위탁 확대를 외주 확대로 읽는 시선이 본사 노조에 남아 있는 한, 광주 물량을 키우는 일은 광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증산이 망설여지는 세 번째 이유는 차의 나이다. 캐스퍼는 2021년 나온 모델로 풀체인지가 멀지 않다. 막바지에 설비를 늘렸다가 수요가 꺾이면 그 부담은 현대차와 광주시에 돌아온다.

정작 시장에선 경차가 없어서 못 판다. 국내 경차 판매는 2024년 10만 대 선이 무너졌고 지난해엔 7만 대 안팎까지 주저앉았다. 그런데 사려는 사람은 캐스퍼 24개월, 기아(Kia) 레이(Ray) 7개월, 일부 트림은 10개월을 기다린다. 견디다 못한 소비자가 중고 캐스퍼를 신차값에 사들이는 풍경까지 나온다.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계약 순서가 곧 생산 배정 순서다. 그리고 계약 뒤 사양을 바꾸면 예상 출고일이 그날 기준으로 다시 잡혀 오히려 밀린다. 당장 차가 급하면 즉시 출고 기획전 물량을 노리는 편이 빠르다.​

캐스퍼의 2년 대기 줄은 인기의 훈장이자, 광주형 일자리 실험이 끝내 풀지 못한 숙제의 그림자다. 라인은 더 돌 수 있다. 다만 일감이 나오지 않는다. 경차를 2028년에야 받는 이 기현상을 푸는 열쇠는 공장 안이 아니라, 공장 밖 협상 테이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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